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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앨리스 먼로 《떠남》

by 답설재 2021. 8. 25.

앨리스 먼로 《떠남》(단편소설)

김명주 옮김, 따뜻한손 2006

 

 

 

 

 

 

 

칼라˙클라크 부부는 승마 강습장을 운영합니다. 수강생이 적어 생활이 어렵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마구간에 들어갔다가 안장을 매고 있는 클라크와 마주쳤다. 그것이 칼라가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다.

당시에는 클라크와의 관계가 단지 성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들 사이에는 남녀 간의 육체적 욕망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활달하고 건강미 넘치는 젊은 여성 칼라는 실비아·제이미슨 부부 집 청소를 해주며 생활합니다. 실비아는 식물학 교수이고 제이미슨은 이름난 시인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그 단조로운 삶의 리듬은 좋은 것이지만 실수는 그 리듬이 좋은 걸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클라크가 실비아를 위협해서 돈을 뜯어내자고 합니다.

 

"신문에 낸다고 엄포를 놓는 거야. 그토록 유명한 시인이라면 훌륭한 기사감이 되겠지. 우리는 그저 위협만 하면 돼. 그러면 그 여자가 다 알아서 길 테니까."

 

'이 터무니없는 계획은 모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그녀 칼라의 말 때문에' 빚어진 사태였습니다.

 

"가끔 그 사람이 내게 은밀히 접근하는 것 같아."

 

아내가 이런 말을 하는데도 무심할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게 삶의 청량제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똑같은 일상의 그 단조롭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뒤집어놓겠습니까?

 

"누구? 그 탐욕스런 영감이?"

"가끔씩 부인이 없는 방으로 날 부르곤 해."

"그래?"

"부인이 소핑하러 가거나 간호사가 없을 때, 아무도 없을 때 말이야."

칼라의 마음속에 퍼뜩 떠오른 황당하고도 음험한 상상을 남편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 당신이 침실로 들어가겠지?"

칼라는 부끄러운 듯, 신출내기 애로배우처럼 콧소리를 냈다.

"가끔."

"그러면 그 영감이 손을 뻗쳐 당신을 침대로 이끌겠지? 그래서? 그다음엔?"

"그냥... 그냥... 뭐가 필요한지 보려고 침대로 가는 거지."

"그래서 그다음엔 뭘 요구하지?"

 

불행하게도 부부간의 이 대화는 점점 발전해갔습니다.

 

상세한 묘사가 필요한 대목에서는 조금씩 과감하게 보태지는 추저분하고도 끈적끈적한 이야기들을 클라크만 즐긴 것은 아니었다. 칼라 자신도 점점 재미를 붙여갔다. 질펀할수록 즐거움을 더해가는 남편에게 고마워하면서...

 

칼라는 이쯤에서 이런 얘기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클라크는 그걸 빌미로 돈을 뜯어내자는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워나가게 된 것입니다.

칼라는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자 도망을 가고 싶어 했고, 이 참담한 심정을 청소를 해주러 간 길에 실비아에게 털어놓게 되었고, 칼라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실비아의 도움을 받아 토론토행 버스에 오르게 됩니다.

 

'이 여자가 토론토까지 가기나 할까?'

소설을 읽으면 저절로 짐작하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단 세 정류장을 가지 못하고 울면서 되돌아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뒤 이틀 동안, 두 사람은 일하다 말고 서로의 손을 흔들기도 했다. 아무도 없을 때, 어쩌다 남편 곁에 가까이 가면 칼라는 얇은 여름옷 속에 숨어 있는 클라크의 듬직한 어깨에 키스를 했다.

"다시 도망치면 당신, 맞을 줄 알아."

"그래 줄래요?"

"뭐라고?"

"날 때려준다면서요?"

"그럼, 물론이지."

 

이지적이고 동정심 많은 노교수 실비아가 클라크로부터 봉변을 당한 것은 칼라가 되돌아온 바로 그날 밤이었습니다.

 

"칼라는 당신의 아내이기 이전에, 먼저 한 인간입니다."

"하! 그래요? 내 아내가 한 인간이라? 정말이오? 알려줘서 고맙군. 제발 내게 똑똑한 체하지 말란 말이야, 실, 비, 아!"

"똑똑한 체하는 게 아니에요.""

"좋소. 그런 게 아니라면 다행이오. 화내고 싶진 않으니까. 그저 몇 가지 다짐해두겠소. 첫째, 앞으로 절대 우리 삶에 끼어들지 말 것, 둘째, 다시는 내 아내가 여기에 얼씬거리지 않게 할 것. 아내가 여기 오고 싶어 할 거라고 다시는 착각하지 말아요.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오. 아내는 이제 당신을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으니까. 이제 자기 집은 자기 스스로 청소하는 편이 나을 거요. 분명히 알아들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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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야기의 전개보다는 스며 있는 느낌을 따라 읽었다.

재미있다.

신비로운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