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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빅토리아 스위트 《신의 호텔》

by 답설재 2021. 8. 7.

빅토리아 스위트 《신의 호텔》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이야기

김성훈 옮김, 미래엔(와이즈베리) 2014

 

 

 

 

 

 

주제넘지만 죽을 때 이런 병원이라면 좋겠다.

라구나 혼다 병원은 빈민구호소almshouse이며 프랑스에서는 이런 곳을 '신의 호텔'이라고 부른단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의대 빅토리아 스위트 교수가 미국 최후의 빈민구호소 라구나 혼다에서 외과의사로 일한 이야기다.

두 달간 파트타임으로 일하러 갔다가 인간 중심의 진료, 충분한 시간에 환자의 몸과 마음, 환경을 돌보는 '느린 의학'에 끌려 20여 년 혁신적·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녀는 첫 부검 때, 병리학자가 전기톱을 들고 그녀가 처음 진료를 맡았던 베이커 씨의 흉곽을 열어 폐와 심장을 꺼내 무게를 재고 복부에서 간, 비장, 췌장, 신장 등을 꺼내 저울 위해 올린 다음 머리뼈를 잘라 회색 덩어리를 꺼냈을 때, 인간의 시체에서는 더 이상 숨겨진 장소 같은 것도 없고 작은 비밀 블랙박스 같은 것도 없다는 사실에서 표현할 길 없는 실망감을 느꼈었다.

 

라구나 혼다에서의 그녀의 의사생활은 환자에게서 스피리투스spiritus와 아니마anima(영혼)을 찾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한 환자를 치료한 사례가 감동적인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가 환자라면 더욱 인상 깊었을 문장 중 두 군데를 옮겨보았다.

 

디엔티 보고서가 중단시킨 것은 바로 수간호사들이 가지고 있던 시간, 즉 예속되지 않는 시간적 여유였다. 이 시간적 여유는 수간호사들만의 것이 아니라 의사를 포함한 모든 직원에게로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시간적 여유가 디엔티의 눈에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였겠지만, 사실은 라구나 혼다를 떠받치는 비밀스러운 구성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수간호사 제도가 사라짐으로써 서류상으로는 큰 경제적 이득이 생겼지만, 그런 시간적 여유도 같이 사라졌고, 결국 환자들에게 집중하고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정신적 공간도 사라졌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비효율성과 좋은 간호가 서로 맞물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잘 생긴 나의 영웅, 커티스 선생은 그 완벽한 사례를 보여주었다.(96)

 

(이사한 병원 건물과 그때까지의 낡은 건물을 바라보며) 나는 라구나 혼다의 정신은 이 건물의 구조물들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왔다. 아치, 탑, 탑 건물, 중세의 환대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끝에 일광욕실이 딸린 개방형 병동 같은 구조물 말이다. 하지만 비어 있는 구 건물을 보니 신의 호텔의 정신이 이제 구 건물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 어쩌면 충격이 가라앉은 다음에, 아니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49일 동안 헤맨다는 중유中有(티벳 불교에서 말하는 죽음과 환생 사이의 형태)를 신의 호텔의 정신, 신의 호텔의 혼령이 떠돌고 돌아온 이후에, 아니 어쩌면 한 건물의 정신과 혼령은 그보다 더 오랜 기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정신은 새로운 건물로 찾아와 환생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갑자기 자기 몸이 젊어진 것을 보고 약간은 어리둥절하고, 조금은 놀라게 될 테지만.(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