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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경미 「꽃 지는 날엔」

by 답설재 2021. 8. 10.

2018.4.18.

 

 

꽃 지는 날엔

 

 

김경미

 

 

꽃 피는 날엔

누구와도 다투지 않기로 한다

 

꽃 지는 날엔

어떤 일도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연두색 잎들 초록색으로 바뀔 땐

낡은 구두로

바다 위 돛단배와 물고기를 만든다

 

어디선가 기차 지나가는 소리 들리면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고

 

저녁 종소리 들릴 듯 말 듯 기억이

자꾸 고개를 돌리면

내 잘못을 용서한다

 

혀로 망친 날은 용서하지 않는다

일주일이나 보름 동안 별빛 보며

세 시간 이상씩 걸어도 부족하다

 

아무것도 믿지 않아서 출구가 없었던 날들

 

20대가 다 가도록 아름답지 못했고

아름답기도 전에 20대가 다 갔으니

 

서른과 마흔을 보낼수록 점점 더 산뜻해져야 한다

 

그런 봄날의 믿음

차츰과 주춤의 간격들

 

가방 무거운 날엔 입술도 무거워야 한다

종일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다

 

눈물을 잊으면 부족한 게 점점 많아져

얼굴이 곤두서네

 

비 오는 날에도

비 오지 않는 날에도

아무와도 다투지 않기로 하지만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후회가 많아서 운다

 

세상 살면서 가장 쓸모 있는 건

뉘우침뿐이라고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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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1959년 서울 출생. 1983년 『중앙일보』 등단. 시집 『밤의 입국 심사』 『고통을 달래는 순서』 『카프카식 이별』 등. 〈노작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2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