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지는 날엔
김경미
꽃 피는 날엔
누구와도 다투지 않기로 한다
꽃 지는 날엔
어떤 일도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연두색 잎들 초록색으로 바뀔 땐
낡은 구두로
바다 위 돛단배와 물고기를 만든다
어디선가 기차 지나가는 소리 들리면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고
저녁 종소리 들릴 듯 말 듯 기억이
자꾸 고개를 돌리면
내 잘못을 용서한다
혀로 망친 날은 용서하지 않는다
일주일이나 보름 동안 별빛 보며
세 시간 이상씩 걸어도 부족하다
아무것도 믿지 않아서 출구가 없었던 날들
20대가 다 가도록 아름답지 못했고
아름답기도 전에 20대가 다 갔으니
서른과 마흔을 보낼수록 점점 더 산뜻해져야 한다
그런 봄날의 믿음
차츰과 주춤의 간격들
가방 무거운 날엔 입술도 무거워야 한다
종일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다
눈물을 잊으면 부족한 게 점점 많아져
얼굴이 곤두서네
비 오는 날에도
비 오지 않는 날에도
아무와도 다투지 않기로 하지만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후회가 많아서 운다
세상 살면서 가장 쓸모 있는 건
뉘우침뿐이라고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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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1959년 서울 출생. 1983년 『중앙일보』 등단. 시집 『밤의 입국 심사』 『고통을 달래는 순서』 『카프카식 이별』 등. 〈노작문학상〉 등 수상.
『현대문학』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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