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박물관, 몇 가지를 봐야 할까?

by 답설재 2020. 10. 26.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에 갔다고 칩시다. 학교에서 집단으로 현장학습을 갔다고 쳐도 좋고, 가정에서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에 갔다고 가정해도 좋겠습니다.

다른 건 다 생각한 대로, 현장에서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하기로 하고, 어떤 전시물을 얼마나 보게 해 줄까만 생각하기로 합시다.

 

박물관의 전시물을 많이 보는 것이 좋을까요, 아주 조금만, 가능하다면 두어 가지만 보는 것이 더 좋을까요?

우리가 학생일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많이 보고 싶어합니까, 조금만 보면 싫증을 냅니까?

다들 그렇습니까, 어떤 아이만 그렇습니까?

그러면 우리는(부모든 교사든)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여기 재미있고 멋진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작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교육적인 면은 교육자나 학부모의 판단에 맡기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자, 여러분. 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는 고려청자 중 하나로 국보 제95호예요. 향로란 향을 피울 때 쓰는 그릇을 말하는데, 이 향로는 향이 빠져나가는 뚜껑과 향을 태우는 본체, 그 본체를 지탱해주는 받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바로 여기 받침 부분이에요. 보세요. 아주 작고 귀여운, 눈이 까만 토끼 세 마리가 본체를 받치고 있는데.......

제가 상상한 프로그램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었습니다. 학생들 열에 아홉은 제가 서너 번째 문장을 말할 즈음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다른 전시품으로 눈을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고학년이 저학년보다 좀 낫긴 했지만 도긴개긴이었어요. 따라서 제가 정말 신경 써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전시품을 보여주고 그것들에 대한 최선의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해당 박물관에 대형 버스 주차 공간이 넉넉한가, 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을 먹을 만한 장소가 있는가, 일반 관람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같은 것들이 문제였습니다. 담당 교사가 명문대를 나왔는지, 해외 유학을 가려다 포기했는지 따위 이력은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요.

박물관 탐방 수업을 두어 번 하고 나자 자연히 요령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학생들에게 전시물 전부를 보여줄 수도 없고 그래 봐야 학생들 기억에 남지도 않을 테니 중요한 것 한두 가지만 보여주자, 하고 마음을 고쳐먹게 된 것이지요. 이를테면 선사시대 전시관을 관람할 때 구석기실에서는 주먹도끼 하나, 신석기실에서는 빗살무늬토기 하나, 청동기실에서는 반달돌칼 하나만 본다는 생각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자 사흘에 아홉 군데를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더군요.

그 사흘 동안 저는 민속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 전쟁기념관, 교과서박물관, 화폐박물관 등을 돌았습니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목적지는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가량 떨어진 지방 소도시의 한복박물관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복 문화와 변천사를 살펴보고 시대별 계층별로 전시된 한복 및 전통 장신구들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규모가 작은 박물관이라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곳까지 가고 오는 시간이 훨씬 길었지요. 박물관이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거든요. 좌우로 논두렁 밭두렁이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시골길을 한참 달려야 나오는, 설마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을까 싶은 위치에 정말 박물관이 있어서 저도 당황했었습니다.

                                              - 김미월 중편소설 『일주일』(『現代文學』 2020년 9월호)에서 옮김.

 

 

나는 적게 보여주자고 주장해왔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합이 없습니다.

두 가지 글을 소개합니다. 이치에 맞는 글인지 보시려며 검색창에 아래 글을 넣어 보시기 바랍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시거든 조금만 보여주세요

                                           옛 거장들

 

그러므로 내 얘기는 모처럼 박물관에 갔는데 아이가 두어 가지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서, 국보도 아닌 걸 가지고 질문을 늘어놓고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른다고 해서, 그렇게 몇 가지 보고 난 뒤에 그만 가자고 졸랐다고 해서...... 전혀 실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얼 봤는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그렇고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셋해봤자  (0) 2020.11.25
유치원은 몹쓸 곳인가?  (0) 2020.11.13
'주류'가 될 '가상교육'  (0) 2020.09.18
어느 학교 교직원연수회-고것들이 꽃이므로  (0) 2020.08.18
코이 잉어  (0) 2020.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