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직생활 마지막에는 두 학교에서 교장으로 지냈다.
첫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책상 옆에 벤자민 고무나무라는 화분을 두었다.
그 나무는 내가 고른 건 아니었는데도 나는 그 나무와 친해져서 마음이 복잡해지면 그를 바라보곤 했다.
교장이면 근엄한 노인 행세를 할 수도 있는데, 나는 왠지 그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근엄하기는커녕 오히려 좀 가벼운 인간인 나는 좋을 때, 기쁠 때, 즐거울 때는 그 나무 따위는 본 척 만 척했고 아이들이 들어와서 "저 나무에 물 좀 줄까요?" 하면 "응,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 나무줄기가 내 책상머리 쪽으로 기울어진 걸 발견했고, 순간 그가 나를 보호해 주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게 놀라웠다. 나는 심란할 때만 그를 바라보고 좋을 때는 본 체 만 체했는데도 나에게 이렇게 대해 주다니 싶었다.
그렇지만 나를 만나러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그 얘기를 하면 그들은 듣지 않았다.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듣는 척했지만 '별 희한한 얘기를 하네. 이상한 교장이 오더니 기이한 이야기로 날 시험해 보나?' 하는 것 같았고, 자기네가 할 얘기만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하고 나갔다.
나는 지금도 그 나무가 나를 보호해 주었다는 그 명백한 사실을 믿고 있다.
누가 참 쓸데없는 소리도 하네, 하면 그때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듯 이젠 내가 그 반응을 무시하고 만다.
두 번째 학교에서는 아예 작은 화분은 생기는 대로 사람들에게 다 가져가라고 하고 큰 화분만 여남은 개 갖고 있었다.
책상 곁에는 '고든세피아'라는 화분을 두었는데 그는 이내 내 머리맡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아, 생각만 해도 눈물겹게 떠오르는 아름다운 꽃까지 피워주었다.
그 꽃은 눈처럼 희고, 별무리처럼 영롱하고, 무늬조차 고귀한 모습이었다.
미안한 말이긴 하지만 작은 화분들은 나를 귀찮게 하는 것 같았다. 우선 하루라도 물을 주지 않으면 피곤해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그런 일이 '의무처럼 느껴져서' 내 방에 있는 것에는 철저히 내 손으로 물을 주면서도 역시 '의무 같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싫었다.
일주일, 보름을 잊고 지내도 그러는구나 해주는 큰 나무들, 큰 화분이 좋았다.
사람도 그런가? 사람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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