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운(星雲)1
아이들을 위한 장기 과제(長期課題)
1
조지프 루소는 롱 아일랜드의 북쪽 해안에 있는, 통근하는 사람들의 거주지인 맨해셋 베드타운에서 아버지가 학교 행정직에 근무하고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인 중상층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재즈 피아니스트여서 루소의 귀는 일찍부터 트여 있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홍역과 이하선염을 동시에 앓으면서 비로소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접하게 됐다.
"그때 한 달 동안 결석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베토벤 앨범과 베토벤 흉상을 집에 보내주시면서 회복하는 동안 음악을 들어보라고 하시더군요."
루소는 베토벤과 사랑에 빠졌다.
2
스티브 로페즈라는 저널리스트가 쓴 『솔로이스트』2에서 줄리어드 음대에 간 학생의 사례를 보았습니다.
이 학생이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내가 발견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한 달 동안 결석하게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내어준 장기 과제였습니다.
그 과제가 계기가 되어 아이는 장차 줄리어드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그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저 저렇게 짤막한 한 대목이었을 뿐이었습니다.
3
우리는 대체로 '내일까지' 해야 하는 숙제를 내어줍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이 '숙제(宿題)'가 되었겠지만, '숙제'라는 그 단어의 의미가 굳어져서 학생들에게 제시되는 과제라면 으레 '당일치기'에 그치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1990년 초, 교육부 초등학교 사회과 편수관이 되었을 때, 나는 교사 시절에 생각했던 수많은 것들을 전국적으로 실현해볼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과제의 유형이었는데, 선생님들께서 보시는 교사용 지도서에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과제를 단기 과제와 장기 과제 두 가지로 분류해서 각 단원·주제별로 짧으면 1~2주, 긴 것은 1~2개월의 장기 과제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자율성의 문제이기도 하고, 무엇을 가르치는 일이 언제나 단조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대단하지도 않은 그 아이디어는 내가 그 업무를 맡지 않게 되자마자 이슬처럼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늘 그런 경향이었습니다. 좋거나 말거나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와전되고 왜곡되고 폐지되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만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는 것 없이, 하드웨어만 발전하고 실제적인 교육은 늘 그대로인 교육을 해왔습니다.
4
이제 우리도 학생들을 믿고(어리다고 단기 과제인 숙제만 내지 말고),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안내만 잘하면 장기 과제도 내어줄 수 있으므로 그런 걸 실천해보면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50여 년 교육을 생각하면서 그저 상식적인(혹은 보편적인)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서 이상한 아이디어를 갖고 와서 적용하면(가령 하루에 책 한 권 읽기, 점심시간에도 책 읽기 등등) 처음에는 신기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정책, 그런 시책들이 현장을 망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기 과제와 장기 과제, 그건 아주 상식적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어 절실하게 여겨지는 일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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