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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이 아이에게 무엇을 주문해야 하나…(2019.7.5)

by 답설재 2019. 7. 5.

 

 

 

 

  "재미있게 지내고 점심 먹고 만나자" 미적미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오늘 아침에도 또 유치원 입구에서 헤어지며 그동안 해오던 대화를 되풀이하고 돌아섰다. 곧 여름방학이다. 2학기가 지나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점점 더 초조해진다. 뭔가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재미있게 지내라"는 부탁만은 바꿔야 한다는 강박감까지 갖게 됐다. 언제까지나 재미있게 놀기만 하며 지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건 쉽기도 하고 지금도 유효한 전통적 부탁일지 모르지만 빛이 바랜, 수십 년 전 버전이어서 싫다. 이스라엘 식도 있긴 하다. 유대의 부모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보다는 으레 "오늘은 뭘 질문했니?" 묻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 경우 실용적이진 않다. 아침부터 "오늘은 뭘 물어보겠니?" 하고 다그치는 건 아무래도 우습고 아이에겐 황당할 것이다.

 

  아이는 이런 생활이 아무리 계속돼도 좋다고 할 것이다. 재미있게 지내는 시간이 귀가해서도 그대로 연장되는 걸 지켜보는 입장이 난처할 뿐이다. 흔히 유치원을 나서자마자 수학학원, 영어학원, 미술학원… 갈 곳이 많고 요즘은 수영강습까지 받는데 녀석은 공룡놀이, 공놀이,

자전거타기… 재미있는 건 얼마든지 있고 아파트 놀이터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든 재미있다.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이 학원으로 직행하는 걸 말리진 않으면서도 마음껏 노는 게 좋다고는 한다. 교육학자들도 재미있게 노는 게 좋다고들 한다. 사교육 전문가들 중에는 놀이도 일찍부터 '스카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부추기는 경우가 없진 않겠지만 관련 고전(古典)을 보면 아이들의 활동 중에서 가장 자발적인 것, 그들의 내면(창조적 충동)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해주는 것이 놀이다.

 

  놀이는 세상을 인식해가는 중요한 수단이자 상호작용이며 교섭방법의 탐색이다. 놀이와 일의 공통필수 요건인 심리적·육체적 긴장을 통해 긍정적인 습관을 형성하게 되므로,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은 장차 어떻게 일하고 살아갈지를 보여주는 거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 스스로 궁리하고, 조작하고, 해결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체득하게 하는 의도적, 조직적인 놀이 환경은 참으로 소중하다.

 

  전문가들은 놀이야말로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그 주장의 내용을 강요하거나 강권하진 않는다.

그들의 그 견해는, 굳이 설명하라면 그렇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먼저 가는 사람들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놀이의 중요성을 알아채고 무엇이든 놀이를 통해 가르친다는 홍보에 위안을 느끼며 서둘러 여러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린다.

 

  초등학교 국어책에 이런 우화가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길을 내려다보고 못마땅해 한 임금님은 길마다 방향을 정해 백성들이 그 방향으로만 다니게 했다. 이어 바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앞지르는 모습을 본 임금님은 일제히 줄을 지어 걷게 했고 백성들이 질서정연하게 걷는 모습에 흡족해했다. 마침내 옆길로 새는 사람, 옆길로 들어와 말썽을 피우는 사람이 발견되자 이번에는 갈림길을 불허하는 표지판을 세웠는데, 어느 날 거센 비바람에 바닷가의 화살표 표지판 하나가 날아가 버리자 백성들의 긴 행렬은 바다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정녕 어떤 길을 가야 할까? 우화는 우화에 지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이 우르르 몰려가는 그 길을 따라 일찌감치 영어, 수학, 한자를 가르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괜히 초연한 척 그저 노는 게 좋다고 어떤 일이 벌어지든 눈감고 지내는 게 정말로 괜찮은 판단일까?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사표를 내고 학원으로 가면서 "한국은 무조건 입시(入試)다. 바람직하진 않지만 현실"이라고 하더란다. 이러다가 아이가 대학에도 못가는 꼴이 나는 건 아닐까? 유치원 원장·원감, 교사들은 자신의 자녀에 대해 이런 고민 없이 지내는 걸까? 혹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온듯한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