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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김지연(단편) 「내가 울기 시작할 때」(단편)

by 답설재 2018. 12. 26.

 

 

 

    김지연(단편) 「내가 울기 시작할 때」

『現代文學』 2018년 12월호 34~54.

 

 

 

 

 

사후세계에 관한 여러 가설을 세워본 적이 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야자를 땡땡이치고 바로 옆 중학교 운동장 한쪽, 가로등 불빛도 없는 계단 구석에서 몇몇과 어울렸던 때였다. 누가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신세 한탄을 했고, 모든 게 다 허무하다는 말이 오갔고, 이야기는 흘러 흘러 어차피 죽으면 다 끝이라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중에는 기독교 신자도 있었고 불교 신자도 있었고 무신론자도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신을 믿지도 안 믿지도 않는 채로 살고 있었다. 별 생산성 없는 말들,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굽힐 마음이 없는 말들이 여러 차례 오간 다음에 어둠 속에서 누가 말했다.

"죽는다는 건 어쩌면 그냥 마음이 산산이 흩어진다는 건지도 모르지."

다른 누군가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처음에 기능을 다하는 건 뭄뿐이지만 그렇게 되면 마음이 머물 곳도 없어지고, 그러니까 마음은 산산이 흩어질 수밖에 없지. 그러면 너라고 할 만한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거야. 너는 여러 마음들의 집합체 같은 거라서."

(34~35)

 

 

 

죽으면 어떻게 되나?

몸은 불타버리고, 혹은 구더기가 득실거리면서 썩어버리고……

아니 깔끔하게 썩기도 하나?

마음은 어떻게 되나?

마음, 혼? 그런 건 어떻게 되나?

 

없어지겠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어서 '영혼'이라는 이름도 지어봤겠지?

그럼, 그건 어떻게 되나?

정처 없이 떠돌까?

살던 곳 주변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닐까?

이러나저러나 가여운 거지?

 

숨이 넘어가면 금방일까?

일본의 어느 호스피스 의사는 숨이 끊어져도 한참 동안, 15분 정도? 듣기는 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그 상태는 아직 죽은 게 아니겠지?

숨이 넘어가면 주변에 있던 가족들이 소리 내어 울지 않나?

누군가 그걸 말렸지, 아마?

망자에게 무얼 어떻게 한 다음, 이제 울어도 좋다고, 곡을 하라고 했지?

죽은 사람은 언제까지, 얼마 동안 들을 수 있는 것일까?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도 생각은 남아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 해보며 정처없이 가게 되는 것일까?

어디로?

좋은 사람은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교회도 다니지 않고, 절에도 다니지 않은 사람은?

이슬람교를 믿은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 이제 와선…….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한 생각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가지고 갈 수 있을까, 그 생각?

 

 

 

죽은 지 2일째 아침에는 누군가 나를 깨우러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나는 혼자 살고 있었다. 동이 터 올 때부터 요란스레 들리던 새소리는 언제인지 모르게 그쳐버린다. 남의 집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또 30여 분 뒤에 비슷한 소리가 한 번 더. 골목을 가로지르는 구두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오토바이 소리,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 밖에 이 거리의 주택가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낮 동안은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 세게 바람이 불면 방충망이 덜컹거릴 뿐이다. 저녁이면 다시 조금 소란스러워진다. 사람들이 귀가하면 TV 소리가 들리고 압력밥솥 소리, 전화벨 소리, 그리고 내 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연달아서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조금 사이를 두고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싶다. 내가 죽은지도 모르고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저 사람은 누굴까.

 

셋째 날 아침에도 아직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누구라도 곧 나를 찾아줄 것이다. 밤 동안은 가로등 불빛이 내 방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가로등 불빛이 좋았다. 사위가 서서히 어두워지는 와중에 막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나의 그런 애착을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동그랗고 노란 그 빛은 어둠 속에서도 자기를 잃지 않는 것 같았다. 넷째 날에는 어디서 빵을 굽는지 구수한 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나갔다. 죽기 전에는 별로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다섯째 날엔 혀끝에서 쇠 맛이 났다. 공기 중에 그런 맛이 떠도는 것 같았다. 여섯째 날엔 너무 작고 기분 나쁠 만치 정교하게 생긴 벌레가 마구 솟아 나왔다.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반복해 생각했다. 혀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굴리면서 완전히 녹아들 때까지. 일곱째 날엔 구수한 빵 냄새는 모두 사라지고 다른 불쾌한 것들만 남았다. 이건 내 냄새일까. 그리고 날짜를 세는 걸 포기했다. 나를 발견한 건 어쩌면 삼이었고, 그는 어딘가 전화를 건 다음에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이제 달리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라는 듯 울기 시작한다. 딱딱한 것이 녹아 뜨겁게 흘러내리는 울음소리에 마음을 의탁하고 싶어졌을 때 나였던 것은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그래도 그때에는 마음 둘 곳이 몇 있어서 그 사람들은 잘 살다가도 불쑥불쑥 나를 떠올렸다.(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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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1983년 경남 거제 출생. 2018년 『문학동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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