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지금까지 뭘 했지?'

by 답설재 2018. 5. 6.





'지금까지 뭘 했지?'






                                                                                                                   2018.5.3.





    1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우박이 떨어졌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직장인들은 우르르 회사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서글퍼 보이진 않았습니다.

  비를 피하기만도 급한데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며 고객을 찾아가는 까만 정장 젊은이는 좀 서글퍼 보였습니다. 게다가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았습니다.



    2


  겉옷을 뒤집어쓴 사람, 작은 우산을 둘이서 쓴 사람들도 보였고, 어떤 젊은 남성은 앞에서 걸어가는 아름다운 두 여성에게 우산을 씌워주느라고 정작 자신은 엉덩이 쪽은 물론 온몸에 비를 함빡 맞으며 오리처럼 뒤뚱뒤뚱 뒤따라가고 있었습니다.



    3


  비를 맞는 늙은이는 처량합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잠시만 쓰더라도 꼭 우산을 삽니다.

  ("또 우산?" "응, 사무실에 있던 것.")

  (그런 상황이 아니면 현관에서 얼른 집어넣고 들어가기)


  편의점에서 우산을 샀지만, 빗줄기가 세차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주인 여자밖에 없어서 폭우만 피하고 싶었는데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들어와야 하니까 처마 밑으로 가세요."("나가세요, 밖으로!")

  순간, 주눅이 들면서 지금 나는 '서울'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처마 밑으로 가야 하는 건, 서울이 아니어도 그럴까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제 늙었구나…….'

  나오면서 보니까 처마도 없는 건물이었습니다.


  사진 속을 두 여성이 걸어갑니다.

  한 명은 모자는 썼지만 우산은 쓰지 못한 채 구부정한 모습으로 걸어갑니다.

  그 날 그 시각 거리 풍경입니다.



    4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주머니에 몇만 원쯤 들어 있지 않으면 시내에 나올 수도 없겠구나.'

  '나는 이제 마음까지 약해졌구나.'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지?'


  새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젊음의 힘이나 권력, 부를 쟁취하기 위한 출발은 터무니없고 마음을 다듬어 이 구멍을 메우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할지 어떨지는 봐야 알겠지요.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일(來日)  (0) 2018.05.10
작은 일들  (0) 2018.05.10
"존나"  (0) 2018.05.03
"저것들 좀 봐"  (0) 2018.04.28
조화(造花)  (0) 2018.04.26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