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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정다연 「녹색광선」

by 답설재 2015. 6. 21.

녹색광선


                                         정다연


당신의 방문을 두드립니다

폭설이 내리는 밤


우리는 침대로 빨려 들어갑니다


당신과 마주 본 적 없는


내게 입 맞추어


입술을 녹여주세요


펄 속에 가라앉은 케르에르비 폐선처럼


온몸으로 당신의 진동을 느낍니다


벗겨주세요


만져주세요


캔버스 위 물감을 붓질하듯


제멋대로인 이목구비는 전부 지우고


상처 낼 수 없는 당신의 피로


나를 칠해주세요


한데 뒤엉키고 섞여 새로운 그림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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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연  서울 출생. 한신대 문창과 재학 중.

 

 

 

그 마음 녹여주지 못한 것이 미안합니다. 그렇다고 이 이목구비 전부 지워져 뒤엉키고 섞여 새롭게 태어나지도 못한 옛 일들이 가슴 아픕니다.

어떻게 할 길이 없습니다.

 

사랑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를 내놓아 새로 태어날 수 있는 날들이 무수히 지나갔습니다.

지나가버린 그날들을 그리워하게 된 것이 이렇게 누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