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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사회과 교과서
-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편수의 뒤안길』 제13집, 2015.3., 1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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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 평전》에서 옮겼습니다. 예전에 교육부 편수국에서 편수관을 지내셨거나 지금 교과서에 관한 행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 뒤편에 이름이 실리거나 하는 분들도 대개 그러실 것 같지만, 책을 읽다가 교과서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나도 그랬는데……' 하거나 '나도 이렇게 할 걸……' 하고 아쉬워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다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드디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무래도 주제넘은 생각이겠지만 인용문의 행간에서 파브르가 그런 일을 하면서 생각했을 것들을 짐작해 가면서 '나도 그랬는데……'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좀 쑥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초등교사 시절에는 저를 직접 본 사람들은 유치한 수준이었다고 할 것이 뻔하긴 하지만 차츰 사회과에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해마다 아이들을 삼삼오오 시청이나 소방서 같은 데 보냈더니 나중에는 시청 직원이 "너희들 담임이 ○○○이지? 맞지? 그럴 줄 알았지. 문제다, 문제……" 하더랍니다. 한 아이가 그 직원 제스처까지 흉내 내며 전했지만 '설마' 싶어서 "문제라고 했단 말이지? 잘못 들은 건 아니고?" 뭐 어떻고 하며 자꾸 캐물었는데, 옆에 서 있던 다른 아이들도 확실하다는 표정이었고, 그러자 오기가 발동해서 건방지게 '내가 이 나라를! 아니, 이 나라 행정을!' 하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다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그때까지도 전통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지구별 월말 일제고사 시험 4학년 사회과 출제 당번이 되었기에 그 지역 지도를 그려주고 "1. 다음 중 우리 고장에서 많이 나는 생산물은 어느 것인가?" "2. 다음은 시장이 하는 일인가, 교육감이 하는 일인가?" "3. 우리 고장은 어느 쪽 산이 더 높은가?" 어떻고 하며, 그 지역에 관한 문제를 출제했더니 온통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일제고사가 연기되고, 본청(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에까지 알려져 사회과 담당 장학사가 직접 문항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당연히 전국적으로 동일한 교과서를 쓰고 있었으니까 말하자면 행정구역은 충청북도, 산업은 전라남도, 관광은 제주도와 강원도, 뭐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당연했고, 따라서 시험문제도 그렇게 출제하는 것이 전혀 거리낌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좀 요약해서 이야기하면, 그러다가 중앙에 자주 출장을 다니게 되었고, 또 그러다가 어느 날 회의를 마치고 나서 교육부 편수관 앞으로 나가 "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미안해서 이젠 출장 같은 건 더 이상 다니기 싫다"고 했다가 아예 서울에서 3년간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고, 다시 그러다가 편수국 사회과학편수관실의 교육연구사가 되었습니다.
그 편수국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잘 모르지만, 저는 보시기에 아주 기고만장했을 것입니다. 교과서나 지도서나 싹 뜯어고치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늘 마음이 복잡했을 뿐만 아니라 몸도 분주했고, 점잖게 편수국에 앉아서 '지시' '명령'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공장(회사)에 나가서 편집·인쇄하는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 밥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점 하나, 선 한 줄도 전통을 지켜서 찍고 긋고 하는 것이 미덕이기도 했겠지만 도저히 그렇게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님들 중에는 "연구·개발기관"인가 뭔가 그런 곳에서 하는 일을 웬만하면 수용해 주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지만 저는 걸핏하면 문제를 제기하고 걸핏하면 고쳐버리고 심지어 새로 쓰면서 전권(全權)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서울 출신도 아니고 저 먼 '지방'에서 올라온, 그것도 초등학교 출신인데다가, 이른바 학위조차 없는, 말하자면 출신 학교래야 이름도 없는 곳,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2년제 대학이었으니 편찬기관에서 주관하는 회의에서 겉으로는 "김 편수관, 김 편수관" 하고 불러주긴 했지만, 제 의견은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사건건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어야 한다거나 그런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라고 하면 자존심 상하고 못마땅할 것은 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 지난 일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해야 하겠다고 생각된다면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았다"는 것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편찬기관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사사건건 견해가 다르고, 그렇다고 해서 태도가 고분고분하지도 않으니까 그쪽도 속이 상할 때가 많을 건 당연하고, 그쪽이 그렇다면 이쪽도 마찬가지로 불편했을 것은 당연한 노릇 아니었겠습니까? 교육부 담당자라고 어디 감정이 없는 냉혈한이겠습니까? 그들에게 그렇게 대하자니까 속이 상하고, 오기도 발동하고, 외롭기도 하고……
제6차 교육과정에 따른 초등학교 사회 6-2 교과서 개발 때였습니다. 온갖 얘기들이 다 잊혀 가도록 두고 한 가지 사례만 기록해 두겠습니다. 이 교과서는, 1. 대한민국의 발전, 2. 우리나라의 민주 정치, 3. 우리와 가까워지는 세계 여러 나라, 4.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일, 이렇게 네 단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무슨 웅변 원고 같았던 4단원 일부의 초고는 단호하게 새로 쓰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3단원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개발기관에서야 정리되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전혀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약 2년간 세월만 갔습니다.
무언가 하면, 그들은 역시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가령, 제 생각은, 6학년이래야 초등학교 아이들인데 세계 여러 나라를 배워봤자 뭘 알겠는가, 이래저래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몇몇 나라를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깊이 있게 배우고, 나머지 나라들은 자율적으로 혹은 나중에 성장해가며 필요할 때 배우든지 말든지 하도록 해주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고, 그 생각을 "제가 현장에서 가르쳐본 바로는……" 어떻고 하며 설명했지만, 편찬기관 연구·집필진 대표는 아예 그 견해를 받아들여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라면 대륙별로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최소한의 나라들이 있는 것이며, 그 나머지 나라들도 지역별 지도를 통하여 나라 이름과 수도 정도는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르치고 배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장 이야기를 하지만, 현장은 다양하다. 그중에는 지방의 형편없는 시골 학교도 있고, 서울의 학교들처럼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차라리 우리보다 더 많은 상식을 가진 학생들이 수없이 많다." 그렇게 설명하고 주장한 그는 저처럼 2년제 대학을 나와 전공도 없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지리교육학 박사였으므로 회의석상의 다른 이들은 두 사람의 설전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아마도 속으로는 '당연히 박사가 맞겠지' 했을 것입니다.
그 교과서는 1997년 9월 1일자로 초판이 발행되었으니까 아마도 그해 초여름에 개발기관에서의 작업이 끝나서 그 즈음에 결재본이 교육부에 제출되었을 것입니다. 새로 개발되는 교과서는 그렇게 학기 시작 두어 달 전에 결재본이 들어오는 것이 예사였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그때까지 벼르고 있었습니다.
결재본이 도착한 그날 저녁부터 며칠간 야간에는 그 단원 원고를 새로 쓰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열흘만인가에 국정교과서주식회사에 새로 쓴 그 원고를 넘겨 조판하게 했습니다. 출판사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개발기관 사람들, 그 교과서 개발에 참여한 교원들도 아마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일은 두고두고 그야말로 "회자"되었고, "무서운 편수관"이라고 한다는 말도 들렸지만, "무서운 편수관"이라는 그 말의 의미는 아마도 "나쁜 놈"이나 "독한 놈"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저는 정부 담당자에게 주어진 권한 행사가 나쁜 내용이 아니라면 전권을 행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개발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아무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실제적으로는 모두 그 대표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해도,5 저에게는 전국의 말없는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과 교사들이 제 견해가 더 합리적, 교육적이라고 생각할 것으로 보고 그 외로움과 고달픔 같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설설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이미 얘기한 것처럼 좋은 학교를 다니지도 못하고, 학벌하고도 전혀 관계가 없고, 게다가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그 업무를 맡기 전에 교과서를 다루고 싶어 몸살이 날 것 같은, 나름대로의 관점은 마련해 두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좀 수다스럽긴 하지만 생생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훨씬 이전의 교사 시절에, 국제지리학회 지리교육위원회 회장을 지낸 독일의 힐데가르트 하브리크가 엮은 『지구촌 어린이들이 본 세상』을6 번역 출판하면서 쓴 '후기'를 보여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졸고를 끝맺겠습니다(이 후기는 이 블로그에서 이미 공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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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 버린 저 싱그럽고 이쁜 젊음에 대하여"(2014.6.18)
-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어린이들이 많이 읽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파브르의 곤충기』를 쓴 저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1823~1915). ※ 이하 註는 모두 필자가 붙인 것입니다. [본문으로]
- ‘파브르가 교과서를?’ 하며 읽었습니다. [본문으로]
-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 밀은 역사, 수학, 물리학, 생물학에도 기여했습니다. 철학자로서의 밀은, 인식은 경험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파브르 역시 머리를 굴려 짜낸 이론과 체계 들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둘이서 함께 식물을 채집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점은, 밀은 자연이 들려주는 시에는 귀가 닫혀 있었고,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직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슬프고 냉담했으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나, 아주 강직한 반면에 보기 드물게 온화하였습니다. 파브르가 교과서를 써서 빚을 갚았다는 것은, 그가 가난한 파브르에게 전셋집 임대비 3,000프랑을 빌려준 일을 이야기합니다. [본문으로]
- 교육과정에 따라 ‘국어’ 교과서는 ‘국어’, ‘사회’ 교과서는 ‘사회’, ‘수학’ 교과서는 ‘수학’ ‘수학익힘책’… 이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본문으로]
- 그 교과서 결재부본의 판권 페이지를 보니까 그때 그 교과서 연구·집필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분도 여럿이고, 저처럼 퇴임한 경우도 많지만, 더러 아직도 교수인 분, 이제 꽃을 피워 교육장 등으로 잘 지내는 분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 『WHERE and HOW I live-10year olds write for the children in the world』(1987, Edited by Hildegard Haubrich; International Geographical Union Commission on Geographical Education). [본문으로]
- 지금 읽어보면 어색한 문장, 적절하지 못한 단어가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그냥 옮기는 것이 정직한 일일 것입니다. [본문으로]
- 이 예언은 맞은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이 책을 읽은 아이들 중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으로]
- 일전에 ‘골든벨 퀴즈’ 프로그램에서 한 여고생이 장차 유네스코 총재를 하고 싶다고 하는 걸 봤는데, 그 학생이 이 책을 읽은 것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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