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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내가 생각한 사회과 교과서

by 답설재 2015. 1. 18.

 

 

 

 

 

 

  기억은 자부심, 자존감 같은 걸 지탱해 주기도 하지만, 힘도 없는 그 허상(虛像)으로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기억속의 일들은 다른 이들에게는 소줄할 리 없으니까 기억해줄 리도 없고, 기억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그걸 붙잡고 있으니까 괴로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자부심, 자존감 같은 것 때문에 무슨 책무성이나 가진 양 더러 예전의 일들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어쭙잖은 것이고, 새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도 흔히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옛 이야기를 듣는 것에 흥미나 관심을 가질 리 없으며,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차라리 혐오감을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다 내려놓고, 버리고, 잊고, 하는 것이 옳다는 걸 생각해냈습니다.

  여기에 이렇게 실어놓고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해놓으면 잊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더 쉽게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 지나간 일이지만, 이러한 일화 속에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이 들어 있고, 그 생각은 고귀하다는 것이 신념처럼 굳어져버려서 오늘까지 나를 괴롭혀온 것입니다.

 

 

 

 

 

 

 

내가 생각한 사회과 교과서

- 한국교육과정교과서연구회, 『편수의 뒤안길』 제13집, 2015.3., 11~20쪽.

 

 

 

 

 

 

 

 

  1871년이 되었다. 파브르1는 아비뇽에서 20년을 살았고, 마흔아홉 살이 되었다.

  경제적 곤란은 전례 없이 강하게 그를 압박했다. 그는 이제 진지하게 교과서를 쓰는 일에 착수했다.2 나이 어린 청소년들도 학문에 입문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었다.

  마침내 파브르는 성공했다. 그해 말에는 밀3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었다.

  과거의 교과서들은 사고를 짓눌렀다. 의식을 텅 비게 만들었고 이해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파브르의 새 책들은 간단명료했다. 그 책들은 최초로 지성과 심장에게 말을 건넸다.

  "이해하지 못하는 가르침은 사람을 튕겨나가게 만듭니다!"

  그는 자신이 공부했던 것에 대해서 숙고했다. 그의 정신이 겪은 여러 경험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썼다. 자신이 어떤 직관적 방법을 통해서 어려움을 하나씩 극복했으며 지식을 획득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 그는 보편적으로 잘 알려져 이해하기 쉬운 예들을 찾았으며, 적절한 비유,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독자를 사로잡는 그림들을 발견했다.

  파브르의 책들은 교과 과정과 관계없는 대목에서는 학술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파브르는 물리학, 화학, 동물학, 생물학, 지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하늘》, 《대지》, 《폴 아저씨의 화학》, 《장작의 역사》, 《장난감》, 《팽이》라고도 불렀다.4

  전체의 이해가 목표였으며, 분해가 목적이 아니었다.

  "부지런한 어린이가 고안해낼 수 있는 정도의 사소하고 순박한 물건 속에, 종종 아름다운 진리가 들어 있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는 장난감이라는 학교가 책보다 더 훌륭하게 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되어준다."

 

 

 

 

 

  《파브르 평전》에서 옮겼습니다. 예전에 교육부 편수국에서 편수관을 지내셨거나 지금 교과서에 관한 행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 뒤편에 이름이 실리거나 하는 분들도 대개 그러실 것 같지만, 책을 읽다가 교과서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고 '나도 그랬는데……' 하거나 '나도 이렇게 할 걸……' 하고 아쉬워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다 마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드디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아무래도 주제넘은 생각이겠지만 인용문의 행간에서 파브르가 그런 일을 하면서 생각했을 것들을 짐작해 가면서 '나도 그랬는데……'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좀 쑥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초등교사 시절에는 저를 직접 본 사람들은 유치한 수준이었다고 할 것이 뻔하긴 하지만 차츰 사회과에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해마다 아이들을 삼삼오오 시청이나 소방서 같은 데 보냈더니 나중에는 시청 직원이 "너희들 담임이 ○○○이지? 맞지? 그럴 줄 알았지. 문제다, 문제……" 하더랍니다. 한 아이가 그 직원 제스처까지 흉내 내며 전했지만 '설마' 싶어서 "문제라고 했단 말이지? 잘못 들은 건 아니고?" 뭐 어떻고 하며 자꾸 캐물었는데, 옆에 서 있던 다른 아이들도 확실하다는 표정이었고, 그러자 오기가 발동해서 건방지게 '내가 이 나라를! 아니, 이 나라 행정을!' 하고 무언가 '대단한' 것을 다짐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에 그때까지도 전통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지구별 월말 일제고사 시험 4학년 사회과 출제 당번이 되었기에 그 지역 지도를 그려주고 "1. 다음 중 우리 고장에서 많이 나는 생산물은 어느 것인가?" "2. 다음은 시장이 하는 일인가, 교육감이 하는 일인가?" "3. 우리 고장은 어느 쪽 산이 더 높은가?" 어떻고 하며, 그 지역에 관한 문제를 출제했더니 온통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일제고사가 연기되고, 본청(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에까지 알려져 사회과 담당 장학사가 직접 문항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당연히 전국적으로 동일한 교과서를 쓰고 있었으니까 말하자면 행정구역은 충청북도, 산업은 전라남도, 관광은 제주도와 강원도, 뭐 이런 식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당연했고, 따라서 시험문제도 그렇게 출제하는 것이 전혀 거리낌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좀 요약해서 이야기하면, 그러다가 중앙에 자주 출장을 다니게 되었고, 또 그러다가 어느 날 회의를 마치고 나서 교육부 편수관 앞으로 나가 "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미안해서 이젠 출장 같은 건 더 이상 다니기 싫다"고 했다가 아예 서울에서 3년간 파견근무를 하게 되었고, 다시 그러다가 편수국 사회과학편수관실의 교육연구사가 되었습니다.

 

  그 편수국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잘 모르지만, 저는 보시기에 아주 기고만장했을 것입니다. 교과서나 지도서나 싹 뜯어고치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늘 마음이 복잡했을 뿐만 아니라 몸도 분주했고, 점잖게 편수국에 앉아서 '지시' '명령'하지 못하고 걸핏하면 공장(회사)에 나가서 편집·인쇄하는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 밥을 먹으며 지냈습니다. 점 하나, 선 한 줄도 전통을 지켜서 찍고 긋고 하는 것이 미덕이기도 했겠지만 도저히 그렇게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님들 중에는 "연구·개발기관"인가 뭔가 그런 곳에서 하는 일을 웬만하면 수용해 주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았지만 저는 걸핏하면 문제를 제기하고 걸핏하면 고쳐버리고 심지어 새로 쓰면서 전권(全權)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서울 출신도 아니고 저 먼 '지방'에서 올라온, 그것도 초등학교 출신인데다가, 이른바 학위조차 없는, 말하자면 출신 학교래야 이름도 없는 곳,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2년제 대학이었으니 편찬기관에서 주관하는 회의에서 겉으로는 "김 편수관, 김 편수관" 하고 불러주긴 했지만, 제 의견은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사건건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어야 한다거나 그런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라고 하면 자존심 상하고 못마땅할 것은 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 지난 일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해야 하겠다고 생각된다면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신경 쓰이는 것도 많았다"는 것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편찬기관에서 하는 일에 대하여 사사건건 견해가 다르고, 그렇다고 해서 태도가 고분고분하지도 않으니까 그쪽도 속이 상할 때가 많을 건 당연하고, 그쪽이 그렇다면 이쪽도 마찬가지로 불편했을 것은 당연한 노릇 아니었겠습니까? 교육부 담당자라고 어디 감정이 없는 냉혈한이겠습니까? 그들에게 그렇게 대하자니까 속이 상하고, 오기도 발동하고, 외롭기도 하고……

 

  제6차 교육과정에 따른 초등학교 사회 6-2 교과서 개발 때였습니다. 온갖 얘기들이 다 잊혀 가도록 두고 한 가지 사례만 기록해 두겠습니다. 이 교과서는, 1. 대한민국의 발전, 2. 우리나라의 민주 정치, 3. 우리와 가까워지는 세계 여러 나라, 4.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일, 이렇게 네 단원으로 구성되었는데, 무슨 웅변 원고 같았던 4단원 일부의 초고는 단호하게 새로 쓰는 것으로 결정되었지만, 3단원은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개발기관에서야 정리되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전혀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약 2년간 세월만 갔습니다.

  무언가 하면, 그들은 역시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가령, 제 생각은, 6학년이래야 초등학교 아이들인데 세계 여러 나라를 배워봤자 뭘 알겠는가, 이래저래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몇몇 나라를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깊이 있게 배우고, 나머지 나라들은 자율적으로 혹은 나중에 성장해가며 필요할 때 배우든지 말든지 하도록 해주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고, 그 생각을 "제가 현장에서 가르쳐본 바로는……" 어떻고 하며 설명했지만, 편찬기관 연구·집필진 대표는 아예 그 견해를 받아들여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라면 대륙별로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최소한의 나라들이 있는 것이며, 그 나머지 나라들도 지역별 지도를 통하여 나라 이름과 수도 정도는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가르치고 배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장 이야기를 하지만, 현장은 다양하다. 그중에는 지방의 형편없는 시골 학교도 있고, 서울의 학교들처럼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차라리 우리보다 더 많은 상식을 가진 학생들이 수없이 많다." 그렇게 설명하고 주장한 그는 저처럼 2년제 대학을 나와 전공도 없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내로라하는 지리교육학 박사였으므로 회의석상의 다른 이들은 두 사람의 설전을 지켜보기만 했는데, 아마도 속으로는 '당연히 박사가 맞겠지' 했을 것입니다.

 

  그 교과서는 1997년 9월 1일자로 초판이 발행되었으니까 아마도 그해 초여름에 개발기관에서의 작업이 끝나서 그 즈음에 결재본이 교육부에 제출되었을 것입니다. 새로 개발되는 교과서는 그렇게 학기 시작 두어 달 전에 결재본이 들어오는 것이 예사였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그때까지 벼르고 있었습니다.

  결재본이 도착한 그날 저녁부터 며칠간 야간에는 그 단원 원고를 새로 쓰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열흘만인가에 국정교과서주식회사에 새로 쓴 그 원고를 넘겨 조판하게 했습니다. 출판사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개발기관 사람들, 그 교과서 개발에 참여한 교원들도 아마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일은 두고두고 그야말로 "회자"되었고, "무서운 편수관"이라고 한다는 말도 들렸지만, "무서운 편수관"이라는 그 말의 의미는 아마도 "나쁜 놈"이나 "독한 놈"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저는 정부 담당자에게 주어진 권한 행사가 나쁜 내용이 아니라면 전권을 행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개발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아무도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실제적으로는 모두 그 대표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해도,5 저에게는 전국의 말없는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과 교사들이 제 견해가 더 합리적, 교육적이라고 생각할 것으로 보고 그 외로움과 고달픔 같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설설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이미 얘기한 것처럼 좋은 학교를 다니지도 못하고, 학벌하고도 전혀 관계가 없고, 게다가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그 업무를 맡기 전에 교과서를 다루고 싶어 몸살이 날 것 같은, 나름대로의 관점은 마련해 두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좀 수다스럽긴 하지만 생생하게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 훨씬 이전의 교사 시절에, 국제지리학회 지리교육위원회 회장을 지낸 독일의 힐데가르트 하브리크가 엮은 『지구촌 어린이들이 본 세상』을6 번역 출판하면서 쓴 '후기'를 보여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졸고를 끝맺겠습니다(이 후기는 이 블로그에서 이미 공개한 글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어린이와 어른들께7

 

 

  나는 사회과의 내용 중에서도 우리나라나 다른 여러 나라의 이모저모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과에 관한 국민 학교 교과용 도서들은 물론,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참고서, 대학 교재, 심지어 영어로 된 책이나 논문까지 더듬거리며 읽고 있습니다. 신문 기사들을 오려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에도 정열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느 책에도 없는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발견은 내게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여러 나라 어린이들도 모두 우리처럼 자기들의 나라를 "우리나라"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린이들도 가족과의 따뜻한 생활을 즐거워하고, 가까운 사람의 불행을 가슴 아파 하면서, 먹고, 놀고, 숙제하고, 읽고, 보는 일에서 우리 어린이들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그 고장을 이 세상 어떤 곳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들의 조상과 민족에 대해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책에서의 이 발견을 우리나라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책들에 소개된 다른 나라에 대한 글들은 노련한 학자들이 쓴 것임에도 영토, 자연 환경, 인구, 자원과 산업, 종교 같은 내용을 평면적으로 소개하여 사진과 지도까지 보면서도, 그 곳에도 우리처럼 이렇게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과 느낌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를 배우는 것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가 그런 나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이며, 그러한 관계는 영토, 자연 환경……에 대한 지식의 암기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그 사람들의 마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지리'가 이 세상 여러 곳의 갖가지 다른 점을 찾는 일에 힘쓰는 학문인 점도 못마땅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세계 여러 곳에도 우리처럼 '사람'이 살며, 그들은 눈동자의 색깔이 다르고 말과 글자도 다르며 음식, 옷, 주택 등 여러 가지가 서로 다르지만, 가장 중요하고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모두들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학문이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생활 무대에 대한 연구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연구를 앞세우자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애칭을 많이 쓰는데, 그것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 교통, 통신, 정보 등이 세계의 모든 지역을 가깝게 이어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구촌이라는 말의 뜻 속에, 이제 세계의 어느 곳에 사는 사람들과도 옛날 촌사람들처럼 마음과 마음을 통하며 살 수 있다는 것도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차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자라면, 나라 안에서만 국회의원이나 의사를 하려고 애쓰지 않고, 유엔 사무총장도 하고,8 유네스코나 유니세프9, 국제 올림픽 위원회 같은 국제 협력 기구의 대표가 되어 수많은 나라들을 시내에 나갔다 오는 것처럼 드나들게 될 것입니다. 세계의 무역에 관한 일들을, 오늘의 미국이나 일본, 유럽 사람들처럼 좌지우지하는 사람도 나올 것입니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빈곤한 생활은 끝내 한국 어린이들이 성장했을 때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해결된다 하면 그리 늦은 일도 아니며, 그 때까지만 기다리는 것은 결코 지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지와 판단과 선택을 위하여, 나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지구촌의 의미를 이 책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방법, 이 책과 같은 자료로써 가르치고 싶습니다. 잘 배운 우리 어린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면, 비행기 안에서 시계 대신 손목에 찬 컴퓨터로 그 나라의 영토, 인구, 생활환경, 자원 등을 검토한 뒤, 그 나라 대표와 만나자마자 그것이 협력을 위한 것이든 경쟁을 위한 것이든 우리나라와 세계와 인류를 위한 일이 어떤 것인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어른들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그러한 판단의 자료와 판단 결과까지 미리 가르쳐 줄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22개국 46명 어린이들의 글을 우리글로 옮기면서, 각 나라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지도들을 함께 제시해 보았습니다. 때로는 글 아래에 낱말의 설명도 붙였고, 그 어린이들의 글로써 다시 생각해 볼만한 문제도 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덧붙인 자료들을 꼭 읽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1981년부터 오늘날까지 나를 가르치고 계시는 정승일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2년간은 밤에 강의실에서 나를 가르쳐 주셨지만, 그 후로는 항상 연구실을 지키시는 모습만으로도 나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대한 교과서'가 이 책을 출판한 데 대해서는, 광복 후의 우리나라 교육을 위하여 처음으로 현대식 교과서를 만든 바로 그 회사이므로, 고마움과 함께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1992년 3월

 

 

 

 

 

 

 

 

"사라져가 버린 저 싱그럽고 이쁜 젊음에 대하여"(2014.6.18)

 

 

 

 

 

 

 

  1.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어린이들이 많이 읽는 것으로 인식되어 온『파브르의 곤충기』를 쓴 저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1823~1915). ※ 이하 註는 모두 필자가 붙인 것입니다. [본문으로]
  2. ‘파브르가 교과서를?’ 하며 읽었습니다. [본문으로]
  3.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 밀은 역사, 수학, 물리학, 생물학에도 기여했습니다. 철학자로서의 밀은, 인식은 경험에서만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파브르 역시 머리를 굴려 짜낸 이론과 체계 들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둘이서 함께 식물을 채집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점은, 밀은 자연이 들려주는 시에는 귀가 닫혀 있었고,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직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슬프고 냉담했으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나, 아주 강직한 반면에 보기 드물게 온화하였습니다. 파브르가 교과서를 써서 빚을 갚았다는 것은, 그가 가난한 파브르에게 전셋집 임대비 3,000프랑을 빌려준 일을 이야기합니다. [본문으로]
  4. 교육과정에 따라 ‘국어’ 교과서는 ‘국어’, ‘사회’ 교과서는 ‘사회’, ‘수학’ 교과서는 ‘수학’ ‘수학익힘책’… 이렇게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본문으로]
  5. 그 교과서 결재부본의 판권 페이지를 보니까 그때 그 교과서 연구·집필에 참여한 분들 중에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분도 여럿이고, 저처럼 퇴임한 경우도 많지만, 더러 아직도 교수인 분, 이제 꽃을 피워 교육장 등으로 잘 지내는 분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6. 『WHERE and HOW I live-10year olds write for the children in the world』(1987, Edited by Hildegard Haubrich; International Geographical Union Commission on Geographical Education). [본문으로]
  7. 지금 읽어보면 어색한 문장, 적절하지 못한 단어가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그냥 옮기는 것이 정직한 일일 것입니다. [본문으로]
  8. 이 예언은 맞은 것이기는 하지만, 아직 이 책을 읽은 아이들 중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본문으로]
  9. 일전에 ‘골든벨 퀴즈’ 프로그램에서 한 여고생이 장차 유네스코 총재를 하고 싶다고 하는 걸 봤는데, 그 학생이 이 책을 읽은 것인지는 모를 일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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