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할아버진 좋겠어요, 게임도 맘대로 할 수 있고…"

by 답설재 2013. 6. 10.

 

 

 

 

 

 

며칠 전 비오는 날 오후, 저 녀석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대체로 집에서 만나다가 모처럼 사무실에 있는 나를 보고 신기해했고, 이것저것 묻는 것도 많아서 한참 대답했습니다.

 

녀석이 다섯 살 때였던가, 내 대신 잠깐만 교장을 좀 해보고 싶다고 해서 그럼 그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학교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오니까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어려운 걸 물으면 어떻게 하죠?"("내가 옆에서 작은소리로 다 가르쳐 줄게.") 

"작다고 깔보는 선생님들도 있을 텐데……"("작아도 아주 똑똑해서 모르는 게 없다고 할게.")

 

그러나 녀석은 그 의자에 앉자마자 "도저히 안 되겠다"며 당장 일어섰기 때문에 '교장 대행'은 순간적인 해프닝이 되고 말았습니다.

 

 

 

 

녀석의 교장 대행 요청에 "그러라"고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애착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약속'('그래, 어떻게 나오나 보자.')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겨우 두 돐이 지난 손녀도 있습니다. 주말 아침,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새로 갖게 된 장난감 박스를 턱 내려놓으며,

"이것 좀 보세요!"하기도 하고,

"할머니, 참외 있어요?"

"할머니, 수리수리 마수리 해주세요."("수리수리 마수리"를 할 때마다 딱 한 개씩의 쿠키나 캐러멜이 나타나니까.)

하는데, 그 한 마디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해지는 걸 보면, 인간이란 참 '어쩔 수 없는 게' 분명합니다.

 

'이것들'의 발가락이 각각 다섯 개인 것조차 신기하고, 심지어 '이것들을 보려고 이승을 다녀가는구나!',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기도 하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종족 보전'의 본능을 감출 수 없는 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게 분명하다는 걸 자인하는 것입니다.

 

 

 

 

저 녀석의 장래희망은 검사, 판사, 그런 것입니다. 앞으로 또 무엇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르고, 나 자신도 녀석이 그걸 바꿔도 결코 말릴 생각도 없습니다.

 

가관(可觀)인 것은, 그 이유입니다. 그걸 해서 "할아버지의 한(恨)을 풀어주겠다"고 이야기한다는데, 나에게는 그냥 저승으로 가서는 안 되는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되겠습니까? 녀석이 판사나 검사가 될 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내가 나서서 결코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할 것입니다. 아니, 녀석이 제대로 된 판사나 검사라면 내가 굳이 그걸 설명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어쨌든 녀석이 그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솔직한 토로일 것입니다. 한 번 더 이야기하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후손을 보고 싶어하는, 동물의 한 종으로서의 '종족 보전 본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간단한 본론이나 밝히겠습니다. 그날 그 비오는 오후, 녀석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할아버진 좋겠어요! 여기서 게임도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합니다. 사람이 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세상에 더 없을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심지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조건이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論語 爲政篇),1 그 말씀도 걸리고,

문득 "남의 이목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삼가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하늘이 명부(命賦)한 것이 '性'이요, 性에 따르는 것이 '道'요, 道를 마름하는 것이 '敎'다.

道는 잠시도 떠날 수 없나니 떠날 수 있으면 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君子는 그 보이지 않고 듣기지 않는 곳을 삼가하고 두려워하나니, 은암(隱暗)한 곳보다 더 드러나는 곳은 없고, 미세(微細)한 일보다 더 뚜렷해지는 일은 없다. 때문에 君子는 그 내오(內奧)를 삼가한다.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니 可離면 非道也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2

 

 

언젠가 녀석도 이 말씀을 상기하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일찍……

 

 

 

 

 

 

  1. '칠십이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씀. [본문으로]
  2. 「中庸」 제1장 天人論 제1절 天과 人(趙芝薰 校閱, 李東歡 譯解, 朴鍾鴻·李相殷 論考 『大學·中庸』(현암사, 1972), 126쪽. [본문으로]

'내가 만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삶의 풍요에 대한 감사  (0) 2013.06.23
가짜박사  (0) 2013.06.19
'고추잠자리'(조용필)에 대하여  (0) 2013.06.07
기분 풀고 가세요 - BEARD PAPA  (0) 2013.06.04
나들이의 자유로움과 그 실체  (0) 201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