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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편지

그리운 사람에게서 온 편지

by 답설재 2012. 8. 13.

                  교장선생님,

안녕하세요. 성복초등학교에 근무했던 ○○○입니다.

 

몇 년 동안 흘릴 땀을 올해 여름 한 해에 모두 흘려보내고

기막히게 들어맞는 입추 절기를 기점으로 다소 떨어진 기온에

그저 감사하며 방학을 보내던 중

책장을 정리하다가 성복교육과정이라는 라벨이 붙은

꽤나 두꺼운 파일철을 열었습니다.

7년이나 된 거니까 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파일철을 열어 속지를 꺼내던 중…

그 속지는 단순히 연수물이 아니라

30대 중반의 제 청춘이었고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의 추억이었고

교장 선생님 그 자체였습니다.

석양이 지는 어스름 저녁의 이 시간에 저는 빛바랜 종이들을 어쩌지를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이렇게 교장선생님께 인사 올리게 되었습니다.

연수물에 철해져 있던 파란편지 부분에서는 도저히 이 느낌을 어찌할 바를 몰랐거든요.

 

성복에서의 저는

교육경력 10년이 다 되었는데도 제 교육관이 흐릿한 안개처럼 뿌옇기만 할 뿐

자리도 못 잡고 뜬구름 잡듯 하며

교육에 대해 고민만 하고 있을 때였는데

30대 초반의 팔팔한 여교사가 하는 고민을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 드신(?) 교장선생님께서도 하시게 됨을 알고

참으로 놀랐고 가슴 설레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였을 거예요.

교장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스펀지처럼 무조건 빨아드리기 시작한 것이…

아이들의 불조심 포스터 중 우리 집이 불타면 큰일이라는 내용의 엉성한 포스터를

교무실 올라가는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붙이게 하신 거,

줄세우기식, 나눠먹기식 시상제를 개선하고자 하셨던 점 등은

신선하기도 충격적이기도 했으니까요.

그 때문에 동학년 선생님들끼리 전체 학년 전체 작품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선정하느라 고생하며 교장 선생님 원망(?)을 조금씩 하기도 했지만요.. 호호호..

아!!

제게 성복은 그 이후의 저의 교사 생활의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용인 ○○초등학교에 근무 중입니다.

올해는 경기도교원연구년에 운 좋게 선정되어

1년간은 개인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공부도 병행하며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응원해주신 만큼 멋진 교사는 되지 못했지만

다른 분들이 하기 싫어하는 6학년을 주로 담임하며

외계인 같은 6학년 녀석들 편이 되어주고자 노력하며 지내왔습니다.

 

아참..

성복에서 유치원생이었던 , 교장선생님이 예뻐해 주셨던 제 딸은

벌써 사춘기에 접어든 6학년이랍니다.

지금도 교장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왕언니셨던 ○○○ 선생님은 퇴임하시고

제주도에 정착하셨고

○○○ 선생님은 용인○○초등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이시구요,

○○○ 선생님은 올해 저희학교로 오셔서 또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성복에서 교장선생님과 함께 했던 교사들은

그 때의 가르침이 세월이 갈수록 새록새록 살아나리라 확신합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는 말씀을 들어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염색하시지 않은 흰머리가 매력적이셨던

연수물에 실린 교장선생님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본 여름 저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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