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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우리 교과서의 현주소

by 답설재 2012. 3. 4.

 

 

 

 

 

우리 교과서의 현주소

 

 

 

 

 

 

 

 

  어제(2012.3.3) 『뉴시스』 기사 「주5일제 첫날, 학교는 ‘우왕좌왕’」의 댓글입니다.

  '어?' '어?' 하며 읽었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수준 높은 관점에서 나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국민들에게 비친 우리 교육, 우리 교과서의 현주소입니다. 사실은, 우리 교과서의 실상(實相)입니다.

 

 

 

 

 

  '학교 공부를 지겨워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1. 교과서가 너무 많다. 즉 한 학기에 배워야 하는 교과목이 너무 많다.

  2. 교과서 내용도 형편없다. 실생활, 직업, 자기 수양, 그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죽은 지식, 낡은 지식을 담고 있다.

  3. 교과서의 구성조차 지루하다. 평면적이다. 일방적으로 설명을 듣기만 하는, 똑바로 앉아서 교사의 설명을 경청하는 '좌식학습'(지식주입식 교육, 강의식 교육, 획일적 지도)을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4. 수업 방법이 구태의연하다. 이것은 교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교과 내용, 교과서 내용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과 내용(교과서 내용)은 '음식을 만드는 재료'라는 설명에서 안타깝게도 <4. 수업 방법>에 대한 글이 잘려 있습니다.

 

 

 

 

  배워야 하는 종류와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모두들 그걸 인정하는데도 정작 좀 줄이려고 하면, 어느 한 교과목도 줄일 수는 없습니다. 반대의 벽에 부딪히고 맙니다. 초등학교에서라도 줄이려고 하면 그 교과와 관련되는 교수, 학자, 중·고등학교 교원들이 나서서 반대합니다. 심지어 몇몇 교과는 쓰이지도 않는 교과서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교과라고 지칭하면 당장 공격을 받을 테니까 그것조차 하지 못합니다.

 

  구성(편집)도 천편일률적입니다. "전보다는 참 좋아졌다"는 말들을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식의 전달' '지식의 주입'이라는 기본 체제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아진 것은, 지질이고, 사진, 그림, 도표 같은 삽화고, 편집 디자인의 수준일 뿐입니다. 내용은 거의 그대로입니다.

 

  수업 방법도 구태의연합니다. '수업'에 대해 아직도 똑바로 앉아서 교사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것도 필요하겠지만, 학생들의 학습활동을 유도해서 이해력, 사고력, 창의력을 높여주는 것이 주된 활동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약장수처럼 유창하게 설명하는 교사를 일류 교사로 치고, 그런 교사가 방송이나 학원에서 일류 강사로 칭송을 받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로 여겨지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입니다.

  만약 말은 몇 마디 하지도 않고 수업을 전개하는 교사가 있다면, 결코 잘 가르치는 교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설명' 위주의 수업을 해야 하므로 교사는 당연히 교실 앞쪽 중앙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 고정관념이 되어 있습니다.

 

 

 

 

  '수업'이 왜 이런 형태에 고착되어 있습니까? 교과서 때문입니까?

 

  그 점에 관해서만큼은 저 댓글을 단 분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좋은 교과서를 갖다 놓아도 수업 방법은 여전히 주입식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기조차 싫지만, 우리 교육의 결함이 오래 전부터 구조적인 문제로 굳어져 있다는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수업')에 대해 교사의 설명을 잘 듣는 것, 그러므로 쓸데없는 질문을 하기보다 우선 설명부터 잘 들어야 하는 것, 따라서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시험점수를 잘 받는 것, 시험이란 개관식 문제에서 정답을 잘 고르는 것……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 수능성적이 좋은 대학 입학에 직결된다는 것…… 말 한 마디 할 줄 몰라도, 글 한 줄 쓸 줄 몰라도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라는 것, 그래야 의사, 검사, 고급 공무원, 외교관, 그런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무엇부터 이야기하고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프랑스처럼 가령 "꿈은 필요한가?"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와 같은 주제의 논술에 대해 85점, 90점, 95점…… 사람들이 신뢰해 줄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교사가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무슨 교육이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무도 우리 교육의 이런 구조를 깨려는 시도를 하지도 않습니다. 교육정책, 교육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은 다른 일에 매달려 다투고 싸우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적으로……" "우선 대학입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교육비 때문에……" 그렇게 말하며 세월을 보냅니다.

 

  그렇다고 좋은 교과서를 만들려는 노력을 중단해버리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는 세월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