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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원길 「立春」

by 답설재 2012. 2. 17.

 

 

立 春

 

 

아침에 문득 뒷산에서

다르르르르

다르르르르

문풍지 떠는 소리가 난다.

 

아, 저건 딱따구리가 아닌가

맹랑한 놈

얼마나 강한 부리를, 목을 가졌기에

착암기처럼 나무를 쪼아

벌레를 꺼내 먹는단 말인가

 

아직 눈바람이 찬데

벌레들이

구멍집 속에서

기지개 켜며 하품소리라도 냈단 말인가.

 

옛사람들은 무얼로

벼룻물이 어는 이 추위 속에

봄이 와 있는 걸 알았을까

 

감고을축입춘(敢告乙丑立春)이라 써서

사당 문에 붙이는데

다르르르르 다르르르르

뒷산에선 그예

문풍지 떠는 소리가 난다.

 

                              김원길 『들꽃 다발』(길안사, 1994)

 

 

 

입춘이 지난 지 2주째입니다.

한파가 몰아치고 체감온도는 영하 십도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창문 너머로 먼 산을 보면 그렇습니다.

 

사람들 입방아도 무섭습니다. "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서로 아는 척했지 않습니까? 그러니 뭐 이번에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걸 누가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아무 준비 없이 봄을 맞은 햇수가 칠십 년 가까워 부끄럽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인생의 봄을 맞는 이들은 얼마나 기다려지는 새봄일까요? 축복이 가득할 것입니다. 지내놓고 보면 아쉬운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