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 뺏아 먹는 법
길에서 나는
정년을 서너 달 앞둔
대선배 술고래 선생과 마주쳤다.
아프도록 손아귀를 쥐고는
엘리뜨 선생, 나 술 한 잔 살테니
내 이야기 좀 들어주소.
이 나라가 이래서 되겠소.
어중이 떠중이 또 다 나선다는 거요
헌데 김 선생, 언제까지 조국을
이 쓰레기들에게 맡겨 놓을 테요
나야 어쩔 수 없는 늙은 몸, 그러나
당신 같은 사람이 이 시국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건 범죄요.
나서시오!
시의원도 좋고
도의원도 좋고
그래서 국회의원도 하고
대통령도 하시오!
하고, 경례를 붙여 대는 통에
1차를 내가 사고
2차를 내가 사고
3차를 내가 사고
4차 5차를 그가 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눈을 떠보니
지갑이 휑하니 비고 가계수표도 몇장 없어졌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요즘 술 뺏아 먹는 법으론
그게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金源吉 시집 『들꽃다발』(길안사, 1994, 1판3쇄), 84~85쪽에서.
우연히 옛 시집 생각이 나서 들추어 보다가 이 시를 발견했습니다. 전에 소개한 시 「취운정(翠雲亭) 마담에게」를 쓴 그 시인의 시입니다.
지금도 아마 지레예술촌 촌장을 하고 있을 이 시인에게는 빚진 게 많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한 마디로 고백하면 어느 여고 국어 교사이던 그 시인은 교육대학 학생이던 저를 자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빚 때문에 이 시집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요즘 술 뺏아 먹는 법'이라니……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오늘 석간 3면 톱 기사 제목은 이렇습니다. 「'票욕심' 채우려 國庫까지 축낸다고?… 점입가경 정치권」
국회의원들이 잘 한다는 기사는 아닙니다. 만약 국회의원들이 지금 잘 하고 있다면, 저 기사가 엉터리가 되거나 취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국회도 보나마나겠지요.
♬
예전에 교육부에서 사회과 편수관을 할 때 읽은 유럽의 어느 나라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알프스 산맥의 그 나라는 지방자치제도가 동네까지 뻗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각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을 할 사람이 없어서 쩔쩔맨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부디 다른 훌륭한 분을 찾읍시다."
"저는 생업에 바쁜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의원은 훌륭한 인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저 같은 위인이 그 일을 맡으면 누가 잘 됐다 하겠습니까?"
그러니 그 나라는 장관 임명도 다 못해서 개인적으로 좀 덜 바쁜 장관은 서너 가지 부처의 일을 겸임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짐작이 갑니까?
만약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지금 당장 각 동네에까지 실시된다면 우리나라는 그 순간 다 거들나고 말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제 다 틀렸지만, 잠시라도 좋으니 그런 나라에 가서 살다오면 좋겠습니다.
♬
이번에는 '쓰잘데기없는' 얘기입니다.
연전에 동네 길가에서 구두를 닦는데, 그 구두방 그 아저씨가 난데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퇴임을 하시더라도 절대 선거에는 나서지 마십시오."
'이 사람 봐라?' 싶어 쳐다보았더니, 그분은 제 성격이며 하는 일이며 온갖 것들을 흡사 쪽집게처럼 열거해주며 만약 선거에 나가면 쓰러져 제 명에 죽지 못한다는 예언(?)을 되풀이했습니다. 하기야 그 직후에 병원 신세를 톡톡히 졌으니 선거에 나선다면 또 그렇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말해야 할 것은, 저에게는 우선 내세울 경력도 없거니와 돈도 사람도 없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여기는 알프스 산맥의 그 나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나라라면 모두들 안 하겠다고 손사레를 칠 것이고 그러면 혹 저에게도 기회가 올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러니까 저로서는 선거에 나설 일이 전혀 없으므로 그 구두방 아저씨는 절대 안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를 보고 '엘리뜨 선생'이니 뭐니 할 사람도 없지만, 저 또한 그렇게 접근하는 사람에게 술을 사 줄 일도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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