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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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6학년을 맡아 아이들(?)을 졸업시킨 것은 1971년입니다. 그 중에는 1969년에 교사가 되어 막바로 담임한 아이, 1970년에 연이어 담임한 아이도 있었으나까 내리 3년을 제게서 배운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지금 대개 50을 훨씬 넘었습니다.
몇 명은 지금까지도 더러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선생님"이라며 조심스러워하지만 저로서는 이미 무덤덤한 상대이기도 합니다. 제 인생의 '산전수전'을 그들도 다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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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남녀 제자 여섯 명을 한꺼번에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졸업시킨 제자들이고, 그들은 졸업을 한 후 처음 만났습니다. 삼십 몇 년 만이라는데 나이를 물었더니 46세라고 했습니다.
이삼식, 김문규, 김구국, 문은숙, 정미경, 백춘자, 옛날식 출석을 부르듯 이름들을 확인했는데, 그 순간 30여 년 전 그들이 어렸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고, 특징이나 장점 등 그때의 이미지를 당장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인사가 끝나고 한담이 시작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 실컷 이야기하고 돌아서서 다시 묻는 평소의 한심해진 기억력 때문에, 만나러 오기 전까지는 '내가 알아보지 못할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구나.
- 아마 더 나이들어 노망(老妄)이 난다 해도 얘들은 알아볼 수 있겠는데, 그러면 기겁을 하고 도망 가겠지?
'한심해진 기억력'이란,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번 일만 해도 처음부터 전화 연락을 한 이삼식 군이 날짜와 장소에 대해 아마 적어도 세 번은 이야기했고, 그것도 미덥지 않든지 나중에 보았더니 정중한 인사와 함께 날짜와 시간, 장소, 찾아가는 길에 대한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 오전에 생뚱맞은 전화를 해서 몇 시까지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으니……(이 글 보고 이 부분 때문에 나를 우스운 사람이라고 홀대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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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대구 비산동, 이른바 그 달동네 아이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당시에는 비만 오면 장화를 신고 출근했습니다. 난데없이 장화를 구입해야 하는 게 참 못마땅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짜장면 아니면 콩국수를 주문해 먹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이후에도 짜장면은 썩 괜찮은데 콩국수는 너무나 질려서 지금도 "콩국수" 하면 바라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습니다.
희한한 것은, 그 동네의 특성대로 대개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는데 그 아이들은 그처럼 순박했고, 크게 말썽을 피운 아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또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기억에는 이처럼 뚜렷하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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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들은 저를 어느 호텔 식당으로 초대했습니다. 선물로 넥타이와 백화점 상품권도 몇 장 준비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은, 그 며칠 전부터 제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어서 모처럼의 약속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 나가지도 않았을 상황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제 가슴속 혈관의 좁아진 부분에 집어넣은 '스텐트'라는 협착 방지용 튜브('풍선'이라고도 하는)가 연방 통증을 일으키고 그럴 때마다 머리가 아파 오고 만사가 귀찮아지니 말입니다.
그날 점심을 어떻게 먹었는지, 그들과의 대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저는 잘 모르고 모처럼 저를 만난 그들은 그러는 제 모습을 잘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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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잘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그들이 직장에서 성공을 거두기를, 사업을 하는 사람은 그 사업이 번창하기를, 어느 회사나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은 아무 탈 없이 언제나 따듯한 근무를 할 수 있기를 빌고 있는 제 마음입니다. 가정은 화목하기를, 배우자는 그들에게 잘 대해주고, 자녀들은 건강하고 하는 일에 성실하여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기원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더 잘 되면 제게 무슨 이득이 있을 리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아무 보답을 바라지 않고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경우는, 제자들뿐이지 싶습니다. 아무런 시기 질투가 없이 무턱대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밖의 경우에서 단 한 가지라도 찾아 보십시오.
그들은 아마 그런 제 마음을 모른 채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 넥타이와 백화점 상품권을 받아 와서 '이걸 어떻게 갚나?' '언제 내가 한 턱 낼 기회를 주려는가? 한번 더 만나 주기나 하려나?' 생각하는 이 마음을 알 리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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