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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이들하고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by 답설재 2011. 11. 7.

 

 

 

 

 

     아이들하고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교육자가 처음으로 제 블로그를 찾아왔습니다. 얼른 그분의 블로그를 찾아가 봤습니다. <어떤 선생님의 어떤 하루>라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사의 하루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교사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다면 그 글을 읽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래, 맞아. 교사들은 이렇게 지내지.'

  '우리나라 교사들은 왜 이처럼 분주한 나날을 보내야 할까?'

 

  여러 군데 그렇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그 블로그의 주인은 지금 어느 교육지원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보나마나 그 글을 쓴 교사만큼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그 글을 블로그에 실어 놓은 것은, 때때로 그 글을 보면서 교사를 지원하는 행정을 더 잘 하고 싶고, 그러면서 우리 교육을 바로잡고 싶은 싶은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어떤 교사의 어떤 하루>를 몇 군데만 옮겨 놓습니다. 원문은 아주 길어서 이 정도는 몇십 분의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슴속에 하고 싶은 말이 그만큼 쌓여 있는 교사들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프로젝션 TV에 동화를 열고

아이들에게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며 화장실로 향한다.

부리나케 용변을 보면서도

각 반에 돌릴 통계 양식을 머리속에 그려본다.

 

셋째시간 즈음 되면 이제 공문의 완성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아이들에게 준비된 학습지를 나누어 주었다.

약간의 공포감과 기대감을 주면서

아이들의 자율학습을 유도한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반짝인다.

역시 난,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난 선생님이다.

 

자신들이 떠들어도 선생님이 야단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안다.

'선생님이 바쁘면 아이들은 논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리에 앉아 통계양식을 만들려고 하는데

"띠링" 전화가 온다. 동학년 전달사항이 있으니 빨리 오란다.

큰일 났다. 통계처리 양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학교 체벌은 아우성이고 학원 체벌은 박수를 치고

학교가 공부하는 곳인가 보육하는 곳인지?

운동지도가 우선인가? 생활지도가 우선인가?

예능대회 출전 지도가 우선인가? 학급 아이 지도가 우선인가?

몇몇의 학습부진아 지도가 우선인가? 전체 아동 지도가 우선인가?

교육과정이 우선인가? 시책에 따른 성과가 우선인가?

아이러니란 따질수록 복잡하다

가뜩이나 분주한 교실에 머리까지 일부로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면 될 것이다.

 

아이들하고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흰 우유를 먹이는 학교가 잘못인가?

초코 우유에 길들여진 가정교육이 잘 못인가?

자문하고 불만하면 무엇 하랴…

어디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의 괴리가 이뿐일까?

 

요즈음 아이들은 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체벌을 하지 않을 것을 알아서인지

별 상관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한다.

 

교감선생님은 여유 있는 미소로 말씀하신다.

"감동을 주는 손님맞이를 합시다. 다 알죠?"

우린, 늘 마음속으로 해야 할 일을 안다.

 

밥을 잘 못 먹는 아이가 있어도

선생님 탓이고, 변기를 잘못 써도 선생님 탓이고

머리가 아픈 상태로 등교해도

일단 학교에 오면 선생님 탓이다.

 

쉬는 시간마저 나의 목은 쉴틈이 없다

나의 눈은 늘 피곤해 있고

나의 머리는 늘 둔탁해져 있다

 

지난 해 도교육청에서는

기본이 바로 선 학생 생활교육의 일환으로

KOCE(친절, 질서, 청결, 예절)운동을 전개하였다.

교실 문에도 스티커를 붙였고

화장실에도 스티커를 붙였다.

아파트에는 출입 엘리베이터에도 붙였고

가정 홍보문도 수차례 보냈다.

인터넷을 통해서 홍보도 했고

신문지상을 통해 홍보도 했다.

학교 교문마다 플랜카드를 붙였고

거창한 행사를 통해 사회 분위기도 유도해 보고자 하였다.

어느 지역에는 찜질방에도 붙였고

식당과, 택시에도 붙였다.

그러면 무엇 하랴!

 

부장 선생님의 전달 사항이 있었다.

멘토링제 운영, 학술연구회에 가입에 대하여 전달되었다.

말이 좋지, 누가 멘토 하고 누가 멘티 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이미 존경하는 선배님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그렇게 배우고 있다.

그러함에도 이젠 격식을 차려 명단을 만들고

계획서를 쓰고, 나중에는 평가까지 한단다.

또 하나의 새로운 업무가 시작되는 것이다.

 

방송에서 오늘 직원 종례가 없는 대신

동학년 별로 전열기구와 시건장치를 잘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선생님들의 눈빛이 안도를 하는 느낌이다.

 

부진아 아이들이 아직 교실에 남겨져 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동학년 협의에서, 학습 관련하여 협의하고 싶었지만

빨리 끝나야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수업자료를 인터넷에 찾아보았다.

몇 가지 괜찮은 사이트를 찾았다.

파워포인트로 순차적으로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

5시 10분

집에서 정리하리라 생각하고 컴퓨터를 껐다.

 

 

 

  "현대 세계에는 여가라고는 거의 없다. ………… 그 결과 영리한 사람은 많아졌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지혜란 천천히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방울 한 방울씩 농축되는 것인데 누구도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이 어느 에세이에서 쓴 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줄어들고 영리한 사람이 많아지는 걸 보고, 더 좋은 세상이 된다고 여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줄어드는 이유를 그는, 여가라고는 거의 없는 현대 사회의 특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버트런드 러셀이 그렇게 쓴 1930년대에 비해 오늘날의 생활은 다시 얼마나 더 분주해지고 여가도 그만큼 더욱 더 줄어들었다는 걸 알면 그는 얼마나 놀라워하겠습니까.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때보다 얼마나 더 줄어들고 그만큼 영리한 사람은 얼마나 더 늘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그는 또한 얼마나 더 놀라워하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걸 참다운 삶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교육이 그렇습니다. 교육이 지혜로운 사람보다 영리한 사람을 육성해 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교사들이 그처럼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교실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나올 가능성보다 영리한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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