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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과정·교과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사 고찰’을 보는 소감

by 답설재 2011. 10. 6.

  어제(2011.10.5.수요일)는 조치원의 (주)미래엔 교과서박물관에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개회식 풍경은 늘 그렇듯이 이른바 VIP들이 소개되고 인삿말과 축사에 이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는 동안 그 VIP들이 돌아갔고, 앞자리가 텅 빈 가운데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VIP들은 인근 대학 총장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맨 먼저 소개되었으니까 그렇게 봐야 할 것입니다. 예외 없이(관례대로) 그들은 개회식에만 참석하고 바로 돌아갔고, 나중에 보니까 시시한(?) VIP들도 대부분 그때 함께 돌아갔습니다. 그 '시시한 VIP들' 중에는 그렇게 돌아가면서 "나도 사회자가 호명을 해주었고, 이렇게 바로 돌아가니까 이쯤이면 제법이지 않은가!' 했을 사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제 그 행사만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행사가 다 이렇게 치루어집니다. VIP들이 초대되어 개회식을 하고, 그들이 돌아간 자리에서 행사가 이어지고……  저는 우리가 이것부터 고치고, 아예 집어치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왔으면 끝까지 지켜보거나, 적어도 발제 혹은 토론의 일부를 들어보고 '이런 걸 내가 듣고 앉아 있나? 도저히 한심해서 안되겠구나!' 싶으면 그때는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바빠서, 하는 일이 많고 중요하고 그래서 얼른 돌아가야 합니까? 그러면 오질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진행되는 행사 문화가 정착되어야 우리나라가 진정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야기한 적이 있는 '국격(國格)'이라는 것도 '생기고'(비로소 싹이 트고), 교육의 수준도 조금은 높아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 생각이 어떻습니까?

 

  다음은 어제 그 심포지엄에서 제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한 글입니다.

 

 

 

윤여탁 교수(서울대학교 : 토론)·신헌재 교수(한국교원대학교 : 토론)·필자(토론)·정준섭 전 국어 편수관(주제발표)·노명완 교수(고려대학교 : 주제발표)·박삼서 교장(영등포여고·사회).  사진 제공 : 박용진 전 교육부 장학실장

 

 

 

□ 들어가며

 

 

  제가 미래엔 교과서박물관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여하게 된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국어 교육이나 국어 교과서에 대한 전문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저를 토론자 명단에 포함시켜 주신데 대한 감사입니다.

 

  그러나 그렇긴 하지만, 저에게 전문성이 없다는 바로 그것 때문에 두 분의 주제발표에 대해 왈가왈부 토론을 한다는 것은, 제 입장에서는 발표문의 주제만 봐도 아무래도 적절치 않다는 것을 재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준섭 선생님의 발표문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통해 본 국어 문자교육 정책’은, 개화기 이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국어 교과서를 통해 본 문자교육정책을 고찰한 결과입니다. 특히 선생님께서 교육부 편수국 국어 편수관으로 재직하시면서 하신 일들을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으므로,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도 이러한 기록에 취약한 특성을 감안하면 이 발표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노명완 선생님의 발표문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변천과 발전과제’도 그렇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국어 교과서를 편찬하는 일을 연구해 오셨을 뿐만 아니라 직접 편찬책임자의 역할을 하신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므로 우리나라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변천 과정을 고찰하신 결과로서 제시하는 발전과제 또한 앞으로 국어 교과서 편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나 편수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두고두고 음미하며 가야할 과제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두 분의 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무모한 짓을 사양하고 ‘국어 교과서와 국어 교과서 편찬 정책’ 및 오늘의 심포지엄에 대한 소감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교과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살아온 세대

 

 

  저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 받은 교과서가 ‘사회생활’ 단 한 권이었습니다. 그때는 1학년은 1학년이니까 교과서를 한 권만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달랑 한 권을 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고 해도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누가 나서서 우리가 알아듣도록 설명해 준 것 같지도 않고, 사실은 ‘그까짓 일쯤’은 대수롭지 않을 만큼 암울한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2학년 때부터는 ‘아마도’ 국어를 비롯한 여러 권의 교과서를 다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으로 저 자신을, 우리나라가 정부 수립 후 ‘교과서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시대’의 ‘교과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살아온 세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표현은, 물론 우리 세대 스스로, 직접적으로 “우리는 다른 세대에 비해 교과서의 필요성을 특히 절감한 세대”라고 말하며 지냈다는 뜻은 아니지만, 인간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 중 한 가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읽을거리’가 거의 없었던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나중에 더러 중학교, 고등학교도 다니게 되지만- 세상에는 오로지 교과서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읽을거리로서의 교과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면 교과서는 무엇으로 어떻게 표현해도 좋을 만큼 요긴하고 고맙기만 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교과서야말로, 특히 국어 교과서야말로 세상은 아름답고 신기한 곳이며 한번 살아볼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유일무이한 매체(정보)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제시한 당시의 국어 교과서 몇 페이지에 대한 소감을 보시면, 필자가 그 당시 국어 교과서를 어떤 눈으로 보았을지 여러분도 다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기억과 추억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 것입니다.

 

  ○ 저는 당시의 교과서 삽화가 ‘총천연색’인 줄 알았다가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표지조차 컬러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추억 속의 교과서 삽화는 여전히 모두 천연색입니다. ‘달님 이야기’의 저 삽화만 해도 흑백임을 확인했음에도 책을 덮고 나니까 다시 ‘총천연색’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 저 ‘흥부와 놀부’는 ①②③④⑤……로 바뀌어가는 장면의 전환이 너무나 절묘했으며, 그 절묘함을 이미 충분히 실감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똑같은 스토리, 똑같은 삽화의 그림연극으로 몇 번이나 보면서도 볼 때마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었습니다. 그림연극은 몇 편 되지도 않았지만, 담임선생님은 기분이 좋은 날이나 비오는 날이면 꼭 그림연극을 보자고 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함성을 올렸습니다.

 

  ○ 한 가지 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필자는 결코 “요즘 세상에는 흥부가 어울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처세로는 오히려 놀부가 현명한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채 오늘에 이르렀으며, 그렇다고 해서 저 이야기 속의 흥부처럼 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때로 좀 놀부 심보로 살아볼까 싶다가도 그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하여 결국 ‘사람은 모름지기 흥부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지울 수 없어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는 이러한 내력의 의미를 소박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는 다른 세대에 비해 교과서의 필요성을 특히 절감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교과서들, 특히 국어 교과서는 ‘영광스런 읽을거리’였으며 그 영광만으로도 그 중요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고, 그렇게 해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편 ‘국가 혹은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교과서들, 특히 이러한 의미에서는 얼마든지 대표적인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국어 교과서는, 자라나는 세대들의 ‘생각과 마음과 정신’을 모으는 구실을 충분히 해냈으며, 그러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얼마든지 자랑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교과서들 특히 국어 교과서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모를 정도의 학습자료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기억 속에서는 아름다운 천연색으로 떠오르는 그 시절 그 교과서의 표지.

저는 문교부장관의 저 메시지조차 몇 번을 읽어

저 인상 깊은 문장을 오늘날까지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교과서가 우리 국민,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국민성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좀 간접적이지만 미국의 어느 주 교육과정 서문에서 본 다음과 같은 대목을 사례로 들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과서가 곧 교육과정이고, 학교교육 현장에서 교과서는 거의 ‘성전(聖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 비유가 크게 무리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The curriculum is mirror that reflects America's dreams for its next generation. It is through the school curriculum that Americans attempt to translate their values into reality. Therefore, no area of this nation's schooling has such a difficult, complicated, and dramatic history as the school curriculum.

-ArthurK.Ellis,JamesA.Mackey,AllenD.Glenn(1988), The School Curriculum, Massachusetts : Allyn and Bacon. P.3.

 

  “교육과정은 미래 세대를 위한 미국의 꿈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 미국인들이 우리의 가치관을 실현하려고 하는 의도(意圖)는 학교교육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학교교육에서 학교교육과정처럼 어렵고, 복합적이고, 드라마틱한 역사를 보여주는 영역은 없다.”(拙譯)

 

  그러면 이제 그 교과서들, 그리고 국어 교과서가 오늘날에는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혹은 의문입니다. 견해에 따라서는 “오늘날에도 그런 구실쯤은 충분히 하고 있고 오히려 더 잘하고 있다.” “충분히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 혹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그런 구실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등의 여러 가지 의견과 주장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느 주장이든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정책이나 제도에 반영되었을 때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발전의 길, 우리의 국민성 형성, 그 국민 하나하나의 인성 함양 등에 부작용이 발생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가령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한 쪽으로 주장하고 나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이런 표현은 정말이지 인용하는 것조차 역겹지만) “아니면 말고” 식이 된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독자(국민)들의 생각, 마음, 정신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의 발전과 국민성 형성을 가로막고 저해하는 역사적인 과오, 무서운 과오를 저지르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현 초등학교 교과서 정책에 대한 의견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사회/도덕, 수학, 과학과 함께,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지난 8월말, 2009 개정 교육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교육과정의 적용에서도 국정 교과서로 구분되었습니다.

 

  이 결정에는 ‘국정 교과서는 시대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에 국정을 전면 폐지하고 검·인정도서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교과서 복수화를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과서를 개발 및 공급하고, 교사에게는 교과서 선택권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초등학교는 학교교육의 초기단계로 교과서 내용의 통일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기 개발된 검정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의 차이가 미미하여 검정을 국정으로 전환하는 것의 의미는 별로 없는데 반하여 검정 교과서의 선택, 공급 및 관리 관련 업무는 과다하다’는 의견이 더 우세한 것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를 대상으로 검정도서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① 전혀

필요하지않다

② 별로

필요하지않다

③ 그저

그렇다

④ 약간

필요하다

⑤ 매우

필요하다

학년

5학년

43

(33.3%)

67

(51.9%)

10

(7.8%)

6

(4.7%)

3

(2.3%)

129

(100.0%)

6학년

44

(29.7%)

67

(45.3%)

27

(18.2%)

9

(6.1%)

1

(.7%)

148

(100.0%)

경력

5년

이하

28

(26.4%)

55

(51.9%)

16

(15.1%)

6

(5.7%)

1

(.9%)

106

(100.0%)

6-10년

19

(35.2%)

24

(44.4%)

8

(14.8%)

1

(1.9%)

2

(3.7%)

54

(100.0%)

11-20년

29

(38.7%)

31

(41.3%)

7

(9.3%)

8

(10.7%)

0

(.0%)

75

(100.0%)

21년

이상

14

(26.4%)

30

(56.6%)

6

(11.3%)

2

(3.8%)

1

(1.9%)

53

(100.0%)

성별

여자

75

(31.8%)

120

(50.8%)

26

(11.0%)

13

(5.5%)

2

(.8%)

236

(100.0%)

남자

10

(25.6%)

15

(38.5%)

10

(25.6%)

2

(5.1%)

2

(5.1%)

39

(100.0%)

전체

92

(30.9%)

144

(48.3%)

39

(12.9%)

19

(6.4%)

4

(1.3%)

298

(100.0%)

 

 

“초등학교 검정도서의 확대방안에 대한 생각은?”

 

① 매우

반대

② 약간

반대

③ 그저 그렇다

④ 약간

찬성

⑤ 매우

찬성

현행 유지

25

(9.5%)

33

(12.6%)

68

(26.0%)

74

(28.2%)

62

(23.7%)

262

(100.0%)

3, 4학년 (영어), 체육, 음악, 미술로 확대

84

(35.0%)

49

(20.4%)

58

(24.2%)

42

(17.5%)

7

(2.9%)

240

(100.0%)

5, 6학년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으로 확대

144

(60.3%)

49

(20.5%)

27

(11.3%)

18

(7.5%)

1

(.4%)

239

(100.0%)

3~6학년 전 교과로 확대

156

(65.8%)

44

(18.6%)

24

(10.1%)

13

(5.5%)

0

(.0%)

237

(100.0%)

초등 전 교과로 확대

164

(68.0%)

43

(17.8%)

20

(8.3%)

12

(5.0%)

2

(.8%)

241

(100.0%)

기 타

9

(47.4%)

6

(31.6%)

3

(15.8%)

0

(.0%)

1

(5.3%)

19

(100.0%)

 

 

  참으로 놀랍고 답답하다고 표현하고 싶은 것은, 검정도서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초등학교 교사들은 위의 표에 나타난 반응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의견조사 결과를 보고, “초등학교 교사들은 국어, 사회, 수학, 과학, 도덕 등의 교과서에 대해 거의 절대적으로 국정 교과서를 원한다”고 판단하기 이전에 왜 교사들이 이런 경향을 나타내는가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교육이 지금 왜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교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기에, 교육의 중점을 무엇에 두고 있기에 “검정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의 차이가 미미하여 검정을 국정으로 전환하는 것의 의미는 별로 없는데 반하여 검정 교과서의 선택, 공급 및 관리 관련 업무는 과다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지(검정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보다 나은 점이 ‘미미하다’ 하더라도 더 나은 것은 분명하다면 그 미세한 차이를 위해서라도 교과서의 선택, 공급 등의 관련 업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책무 아닙니까?), 과연 우리 교육이 교육목표와 교육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리의 교육행정이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함께 반성해보아야 마땅한 것 아닌가 싶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의견조사 결과를 앞에 놓고 단순하게 “그 봐, 국정이 좋다지 않아!” “그 참 잘 됐네.” 혹은 “굳이 그렇다면 국정으로 해야지 어쩔 수 없지 않나?” 한다면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교과서의 종류에는 국정 교과서 외에 검정 교과서도 있고 인정 교과서도 있으며, 심지어 유럽을 중심으로 교육적으로 앞서가는 나라들은, 1990년대부터 일정한 교과서가 없는 자율채택제도를 실시하는 경향이라는 것을 교사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교과 교육학자들과 교과서 관련 전문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언젠가 부담을 갖고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교과서를 선택하고, 공급·관리하는 업무가 참으로 중요하며 사실은 그것이 교사의 본무 중 한 가지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번에도 국정 교과서로 구분 고시한 일과 무관하게,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 꼭 강조되어야 마땅한 일이 분명합니다.

 

  덧붙이면, 하필 국어 교과서를 두고 해야 할 말은 아니지만, 앞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교과서 정책이나 제도를 논의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는 이런 교과들에 대해 초등학교에서는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홍보할 것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 두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인정제를 실시하고 자율채택제를 도입하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국정 교과서 중심인 우리의 논리를 합리적으로 정립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단순하게 ‘초등학교는 학교교육의 초기단계로 교과서 내용의 통일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기 개발된 검정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의 차이가 미미하여 검정을 국정으로 전환하는 것의 의미는 별로 없는데 반하여 검정 교과서의 선택, 공급 및 관리 관련 업무는 과다하다’는 의견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해서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그런 논리는 중·고등학교라고 해서 별다를 것도 없고, 다른 나라라고 해서 별로 다를 바 없는 논리이며, 심지어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성립할 수 있는 논리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언제까지라도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나라로 남을 것입니다.

 

  하필 국어 교과서를 두고 해야 할 말은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 제도에 관한 이와 같은 현실을 탈피하고 수준을 향상시켜가는 일에서 국어 교과서가 무언가 앞장서서 해결해 나가는, 새로운 변혁을 추구하는 교과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이 심포지엄의 의미

 

 

  제가 무엇보다 감명 깊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심포지엄의 의미입니다. 우선 국어 교과서사(敎科書史)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한 느낌대로 이야기해도 좋다면, 우리의 편수사(編修史)는 매우 소략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상당한 학자들도 옛일에 대해서는 이미 발표된 내용을 인용하기에 급급하고, 심지어 옛 교과서의 내용에 대해서조차도 이젠 그런 교과서를 찾아보기조차 어려우므로 “누가 그러는데 우리 옛 교과서는 이렇고 저렇다더라.” 식으로 흡사 남의 나라 교과서를 이야기하듯 표현하는 경향입니다. 사실은 저도 이번에 미 군정기 혹은 제1차 교육과정기의 국어 교과서를 구해보려고 노력하면서 실제적인 상황에서는 “충분히 그렇겠구나!” 싶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 시대의 교과서를 구해 보시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육개발원 사이버교과서박물관도 있고, 한국교과서연구재단 교과서정보관도 있긴 하지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령 한국교과서연구재단 교과서정보관은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의 누구나 언제든지 마음 놓고 실컷 이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거의 아무도 이 정보관의 자료 확충에 관심이 없으며 이 재단이 비영리 공익법인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아무도 자신이 가진 관련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아직은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다른 교과에 대해서도 이런 심포지엄이 연이어 개최되면 좋겠고, 욕심을 좀 낸다면, 더불어 심포지엄을 여는 그 교과의 우리나라 교과서사(敎科書史)를 개관할 수 있는 전시회도 개최되면 더 좋겠습니다. 그런 심포지엄, 그런 전시회에 참석하면 기념으로 옛날 교과서 영인본(影印本)도 구입할 수 있게 해주면 매우 즐거울 것 같습니다.

 

  미래엔 교과서박물관의 심포지엄을 즐거운 마음, 고마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모처럼 소박한 꿈을 꾸어 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