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천사들을 만나러 다닌 길

by 답설재 2010. 2. 10.

 

 

 

 

사진에 나타나 있는 길은 시시해보이지만, 그건 원시시대 휴대전화로 찍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내가 2년 6개월간 '양지' 아이들을 만나러 다닌 길입니다.

4, 50분이 걸리던 길이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되어 20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막히거나 말거나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았지만,

이제 쌩쌩 달릴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그 길을 오가며 늘 천사들을 만나보러 다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꾸중을 하거나 낯을 찡거리거나 소리를 치거나 ……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나에게는 그렇게 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이 '천사'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일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잘 대해주면 그들도 나에게 잘 대해줍니다.

내가 그들이 있는 복도를 지나가거나

그들이 내 방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그들은 내 표정을 살핍니다. 그렇게 되면

나도 그들의 표정을 살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표정을 살피게 되고,

그러면 언짢을 일이 있을 리 없습니다 (표정을 살피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언짢기는커녕 그들 중의 누가 말을 걸어오면,

나는 얼른 대답을 해주어야 하고,

그들 중의 누가 소리없이 미소를 지으면,

나는 얼른 쭈글쭈글한 미소라도 짓게 됩니다.

혹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순간이 있었다면,

누가 그런 순간을 본 적이 있었다면,

그 증거를 한 가지라도 대어주면 내가 사과하겠습니다.

그렇게 2년 6개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종업식, 졸업식을 하는 날입니다.

그들에게는 졸업식이고 종업식이지만,

나에게는 정년퇴임식입니다.

나는 이제 몸과 마음이 시들어 정년이 되었으므로 그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며,

그건 한없이 섭섭한 일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좋은 일을 무턱대고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건 불공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불만은 없고, 그냥 한없이 섭섭할 뿐입니다.

한 가지 아는 체한다면,

그들은 우리보다 착하고 슬기롭지만,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우리만큼 모릅니다.

그래서 학교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학교장 인사'라는 내 글에 좀 설명해두었습니다.

그 인사말도 이제 내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갈 때 내리고 가겠습니다.

 

 

 

'학교장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급 담임 배정  (0) 2010.02.25
회고사 -아이들의 모습-  (4) 2010.02.15
발견 -과제물 전시회-  (0) 2010.02.09
교장이 하는 일  (0) 2010.02.03
원어민교사 루크  (0)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