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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회고사 -아이들의 모습-

by 답설재 2010. 2. 15.

교장이 졸업생 대표에게만 졸업장을 주고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담임에게 받게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졸업생들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나누어주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거추장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신기해할 사람들은 대체로 학부모들이고 거추장스러워할 사람들은 아이들이나 교사들이었을까요?

    

그런데 두 학교에서 여섯 번째 치른 졸업식에서 아이들이나 교사들이나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하기야 '별것아닌' 상장까지 하다못해 교장실로 불러서라도 제 손으로 직접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교장이니까 한 해의 마지막 행사에서 굳이 교장의 그 생각을 꺾어보려고 나서진 않겠지요.

 

학부모들로서도 '그런가보다' 할 사람이 대부분이고, 더러는 '그 참 별나구나' 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 '오리아빠'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블로그「오리아빠의 사진 이야기http://blog.daum.net/duck100000/15962219」에 「남양주양지초등학교의 아름다운 졸업식」이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사진 석 장도 그분의 블로그에서 화면캡쳐로 가져온 것입니다.

 

졸업생 276명…… 수도권에선 그저 평범한 규모의 학교일텐데 그러나 그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생 모두에게 졸업증서(상장도 아닌데)를 일일이 건네고 손잡아주신 ○ 교장선생님. 천사를 사랑하시는 그분께 열등생과 우등생은 그저 속인들이 떠들고 이야기하는 그저 어지러운 이야기였을 듯, 얼떨떨하지만 새로운 경험에 기분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천사'라는 표현은 이 블로그의 '천사를 만나러 다닌 길'이라는 글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분의 글이 궁금하면 그 블로그에 가서 보시기 바랍니다.)

 

 

 

 

 

 

 

 

 

 

보십시오!

 

딱 석 장의 사진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이나 모습이 서로 다르고 제 표정도 달라져 있습니다. 우리의 표정, 그 의미 또한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리아빠' 같은 사진 전문가를 제 마음대로 좀 쓸 수 있다면, 저는 그날 그 졸업생들이 제게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모두 찍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은 6학년 부장선생님께 "이번 졸업식 때는 각 반 아이들과 함께 학부모들도 함께 들어와서 사진이라도 찍게 하자"고 제안한 것도 다 그런 의미를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수백 명 그 아이들이 제 앞으로 다가와 졸업장을 받고 악수를 나눈 다음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 과정의 연출이 다 달랐습니다. 백이면 백, 다 달라서 굳이 분류하면 276가지 스타일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심지어 몇 명의 아이들은 제가 봐도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 이런! 이 모습이라니!' 하고 그 모습을 기록해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다 다르다."

 

그건 참으로 대단하고 중요하고 어쩌면 무서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기 좋은 말로 "사람은 개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들은 모두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모습을 보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그 국격(國格)이라는 것이 낮은 후진국가, 후진사회일수록 사람들의 개성을 소홀히 하는 생활, 학생들의 개성을 소홀히 하는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가지만 예를 든다면, 제가 개인적으로는 현재의 우리나라 '영재교육'을 마땅찮게 여기는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줄여보면, "너희들은 영재와 영재가 아닌 아이들로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영재들을 선발해서 특별한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 아닌가요? 틀렸습니까? 이것 말고 무슨 심오한 영재교육철학이 있습니까? 있다면 제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년을 맞이했군요.

    

우리나라는 최근 가뜩이나 출산율이 낮아서 야단이지만, 우리 교육자들은 여성들에게 "아이 좀 많이 낳아주세요"하고 요청할 입장도 아니므로 학생 수에 욕심내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지는 모든 아이들에게 영재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게 옳지 않을까요?

 

독서영재교육, 축구영재교육, 풀륫영재교육, 마술영재교육, 관찰영재교육, 작곡영재교육, 수학영재교육, 체조영재교육, 성악영재교육, 태권도영재교육, ……. 아이들은 한두 가지씩은 다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견해의 전제입니다. 저 같은 인간도, 부끄럽지만 지도제작에 재능이 좀 있어서 남을 놀라게 한 적이 있으니 하물며 저 아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고보면, 제 견해가 옳다면 -최소한 옳을지도 모른다면- 현재의 영재교육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측은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혹 나중에 이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들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게 되는 날 저와 같은 견해를 이야기하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준비를 해두어야 할 것입니다.

    

할 이야기가 많지만(길지만), 오늘은 이만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남양주양지초등학교 미래관, 그 '미래관(未來館)'에서 저는 276명, 그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졸업장을 주고 악수를 나누며 참 즐거웠습니다. 혼자 즐겨서 미안합니다. 여러분은 지루했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은 자신의 차례가 있었기 때문에 지루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되었습니다.

    

저는 6학년 졸업 때 면사무소에 가서 호적초본인가 뭔가를 떼어가지고 그 계단을 내려오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린 '순 촌놈'이었습니다. 늘 그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대했습니다. 그렇게 대하면서 아이들이 멋있게 자라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날 저는 '회고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회고사'라면 '回顧, 懷古, 回告' 중의 한 가지일텐데 그 아이들에게 지나간 일을 이야기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는 지난해에 어느 대학교의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멋있게 지휘하는 교수를 봤다. 부러웠다. 얘들아, 너희들은 10년 후에 대학교 총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게 된다. 그때 너희가 그 졸업장을 멋있게 받으면 좋겠다. 또 우리나라 교육은 불행하게도 외우는 공부에 치중하고 있으므로 깊이 생각하며 공부하고 남다른 생각을 하며 공부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마련이다. 앞으로 그렇게 공부하고 생활하여 대통령 앞에 나가 훈장을 받게 되면 멋있게 받도록 해라. 너희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저는 그 시간에 이런 얘기를 해주었으므로 그건 '회고사'가 아니고 '격려사'라고 하면 좋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하는 일 지켜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저도 그만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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