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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비호감상(非好感賞)

by 답설재 2009. 12. 27.

  틀림없는 그 얼굴이지만 왠지 이상해서 묻습니다.

  “쟤가 ○○○이지?”

  “아니.”

  “닮았는데?”

  “아니라니까? ○○○보다 어리잖아.”

  함께 TV를 보며 그렇게 묻고 답하던 때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요즘은 아주 간단해졌습니다.

  “쟤가 ○○○이야?”

  “아니, 다른 ○○○이야.”

  더 물으면 좀 가만히 있으란 말을 듣기 쉽습니다.

 

  이제 TV에 나오는 탤런트나 아나운서, 가수 들을 대충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나이를 넘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요, 요즘 젊은 여성들 중에는 누가누군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간혹 봐서는 연속극은 흐름을 따라잡기도 어렵고, 토크쇼 같으면 출연진의 특성을 모르므로 내용 파악이 어려울 수밖에 없어 심지어 웃어도 왜 웃는지조차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 비슷한 얼굴이 많아졌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다 아는 일이니까요.

 

  어젯밤, KBS 2TV에서는「천하무적 야구단 시상식」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습니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야구 인구 확대 또는 생활야구 보급에 기여하는 오락 프로그램입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신인상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상을 주다가 돌연 ‘비호감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비호감상이라니, 아무리 오락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기분 좋은 수상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헉! 아주 잘 생기고 야구도 잘 하는 그 김○수가 '비호감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습니다.

 

  사회자가 설명했습니다. 그를 '비호감상' 대상으로 뽑은 시민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대었다는 것입니다.

  "잘 생겼기 때문이다."

  "야구를 너무 잘 하기 때문이다."

  "잘 생긴데다가 야구까지 잘 하기 때문이다."

  오락 프로그램이니까 그냥 웃고 넘어가자는 뜻입니까?

 

  나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머잖은 날,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정말로 그렇게 할 것이라는 예감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다 뜯어고쳐 -탤런트 ‘김○수’가 그렇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 ‘다 뜯어고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발휘해서- 그 남자가 그 남자 같고 그 여자가 그 여자 같게 되면, 말하자면 다 멋있고 다 예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비호감' 대상들이 될 수밖에요.

  그 이유 때문인 것은 아니지만 오래 전부터 ‘미인대회’ 중계방송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방송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아무리 강력하게 반대한다 해도 그 방송이 돈이 된다면, 돈이면 해결되는 세상 아닙니까?('착한 관점'은 아니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돈이 되기만 한다면 웬만하면 성취시키겠지요.

 

  두고 볼 일은 더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날, 사람들이 찾는 남성상(男性像), 여성상은 ‘장동건’이나 ‘전지현’이 아닐 것입니다. 물을 것도 없이 -여성단체, 남성단체들은 또 무어라고 비판하더라도- 남성답고 여성다우면서도 그(그녀)만의 개성을 지닌 인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형외과의들이 하는 일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날, 회사나 거리, 각 가정에는 ‘장동건’ 닮고 ‘전지현’ 닮은 로봇들도 즐비할 것입니다. 못생긴 인간들이 잘 생긴 로봇들을 거느리고 살 것입니다. 일본에는 벌써 그런 인형과 사는 사람도 있다지 않습니까. 비록 아직은 주로 섹스 대용품 기능을 한다지만…….

 

  우리 교육은 어떻습니까? 혹 우리의 관점대로, 우리의 취향대로, 모든 아이들을 선남 선녀들을 만들어가려는 뜻은 아닙니까? 말하자면 그렇게, 우리의 말이나 잘 듣고 우리에게 순종하는 아이들로 만들려고 갖은 수단,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일제히 오전 9시에 수업을 시작하고, 그 수많은 교실에서 그 수많은 아이들이 1교시에는 ‘국어’(또는 ‘수학’ ‘과학’)을 공부해야 하고, 그 수많은 아이들이 어렵거나 쉽거나 복잡하거나 간단하거나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오전 9시 40분(혹은 45분, 50분)에 그 공부를 마쳐야 한다면, 우리의 의도는 그런 가치관에 의해 선남 선녀인 로봇을 만들자는 것 아닙니까?

 

  "순종하는 아이들, 획일적인 일정 같은 것들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넘쳐나서, 주체를 못할 때의 이야기다. 요즘은 아이들이 귀하다. 그러니까 교육도 달라졌다." 그렇습니까?

  거기까지만 통제되고, 수업의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개성을 존중하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대화나 활동이 잘 전개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안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비호감상'을 보고 충격을 받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은 내용을 구속하고 제한합니다. 내가 보기에 획일적인 모습이 너무 흔한 것이 우리 교육현장, 우리 교육제도입니다. '오전 9시' 이야기는 정말로 단순한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호감상'을 보고 저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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