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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장 컬럼

소나무 바라보기

by 답설재 2009. 11. 9.

 

 

 

   학교 진입로가 새로 포장되었습니다.

   지난 9월 하순 어느 날, 읍장을 찾아가 차 한 잔 달라고 해놓고 얘기를 꺼냈더니 올해는 시청의 예산 조기집행으로 남은 예산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간곡히 부탁해보겠다고 하더니 지난 2일(월요일) 오전에 저렇게 단장되었습니다.

 

   2007년 9월에 이 학교에 와서 지금까지 약 2년간, IMF 때 지어서 시설·설비가 이렇게 허술하다는 이 학교의 리모델링에 세월을 보낸 것 같습니다.

   도서관 리모델링, 교감실 및 회의실 마련, 과학실 리모델링, 행정실 정비, 유치원 리모델링 및 종일반 교실 마련, 유치원 놀이터 조성, 체육실 마련, 각 교실 책걸상 및 사물함 교체, 프로젝션 TV 교체, 급식실 시설·설비 교체, 교사용 책걸상 교체, 수도 배관 및 전기 배선 공사…… 찾아보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정화조 철거 같은 것은 흔적도 없지만 고심이 컸던 사업입니다. 건물 뒷편 주차장에서 차를 내리면 악취가 진동하여 도저히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이라고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교직원들은 "본래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것부터 해결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그 냄새가 나지 않게 되었을 때 "아, 이제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다"고 하기보다 "본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겨울방학을 하면 화장실 리모델링 사업을 하게 됩니다.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받아두었고, 어떤 화장실로 바꿀지 설계도까지 마련해두었습니다. 구조부터 아기자기하게 했고, 아이들이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불이 켜지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현대식으로 설계했으므로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방학을 마치고 개학하는 날, 아이들과 교직원들이 좋아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설렙니다. 우리 아이들의 그 모습을 보고 떠나게 된 건 행운입니다.

 

   구리·남양주교육청에 더러 아쉬운 소리를 하며 지낸 셈입니다. 다 털어놓으면 때로는 이 지역 출신 교육위원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들이야 우리 학교를 도와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므로 제 자존심이 상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인사들에게는 절대로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일들을 하는 기관이면 더 급한 일을 하는 데 예산을 배정했을 것이고, 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는 대표라면 당연히 이곳저곳 고루 살피며 일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잘 찾아보면 아름다운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모습들입니다. 민들레는 씨를 날리려고 준비한 것도 보이고, 부지런하게도 새로 노란 꽃을 피운 것도 보입니다.

 

 

 

 

 

 

 

 

 

 

   있으면 좋은 것,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도 아직 많습니다. 보십시오. 저 단풍 아래로 걸어가는 아이들이 단풍이 지고나면 무얼 바라보며 지내겠습니까. 2년 동안 운동장을 내다보면서 '어디 눈먼 돈 좀 없나? 키 큰 소나무 몇 그루만 사서 운동장 저 건너편에 심어놓으면 아이들이 그 변함없는 모습을 바라보며 지낼 텐데……'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도농역에서도,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그 인근에 있는 남양주소방서를 지나면서도, 신호를 기다리는 사능사거리에서도 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곳들은 무슨 돈이 많아서 그렇게 잘 심어놓았는지…….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나오지만,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歲寒圖)에도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치고 소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해야 할 것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들이 이용하도록 신발장과 200켤레 정도의 값이 좀 싼 실내화를 마련해 두었더니 "왠 공짜 실내화가 이렇게 많으냐?" 싶었는지 순식간에 다 사라지고 말아서 실망이 컸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저는 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를 '도둑'으로 여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학교에 볼 일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가져갔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행정실장에게 부탁해서 갑자기 눈비가 오는 날, 아이들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우산과 우산꽂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마음대로 쓰고 갔다가 이튿날 제자리에 갖다두게 하고 다음에 또 이용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실내화처럼 그것도 다 없어진다면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삭막해도 학교는 아늑한 곳으로 남아 있으면 그나마 좋을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아직 수두룩합니다. 건물 벽은 색이 바랬고, 낙서도 많습니다.

   체육관도 지어야 하고, 그 체육관 건물에 대형 도서관, 극장식 시청각실을 마련하면 학부모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기도 좋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마음놓고 책을 읽을 수 있고, 평소의 공부 시간에도 발표회 형태의 활동을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걸핏하면 "가자. 시청각실에 가서 발표하자." 할 것입니다.

   돌아다녀 보면 그런 시설이 그렇게 흔한데 우리 학교에만 없는 것이 속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사업을 전개해보려고 시청에서 5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한 푼도 나오지 않아서 그 5억원을 돌려주고 말았습니다. 회계년도가 2009년이므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추진하겠다고 하고 돌려주었으므로 체육관을 짓고 싶으면 언제라도 다시 요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교장을 거의 다 했으므로 이런 꿈들을 접고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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