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대책이 조롱받는 이유
교육과 학습이 이루어지는 시간, 장소, 비용 같은 조건들은 규제되는 것이 마땅한가? 또 규제될 수 있는 일인가? 사교육대책이 논의될 때마다 갖게 되는 의문이다.
그런 의문은 달리 표현될 수도 있다. 가령 학교교육이 허다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국가․사회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단순히 사교육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만으로 누구에게나 그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강화하자면, 교육목적에 비추어 학교교육이 그만큼 차별화되는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 당연하지 않을까?
사교육대책이 나올 때마다 국민들의 반응은 늘 시원치 않고 심지어 조롱을 받는 모습을 보면, 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 과정이 반복돼야 하는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기획위원장이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을 강력하게 단속하겠다면서 “이 전쟁에서 전사해도 좋다”고 했지만, 교과부장관의 “준비 없이 성공할 수 없다”, 여당 원내대표의 “분수에 충실하라”는 비판에 따라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처절하게 싸우겠다”는 의지가 의지만으로 막을 내리며 결국 “동네 중소기업의 일도 이렇게 왔다갔다 하진 않는다”는 조롱을 받았다.
지난달 교과부가 당정협의에 내놓은 사교육대책은 어떤가? 이번에 발표된 대책은 특목고 입시와 방과후학교 개선을 통해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과학고의 경우 경시대회와 영재교육 수료자의 특별전형 폐지, 입학사정관제 도입, 국제올림피아드 및 영재교육 대상자 선발방식 개선이 그 내용이고, 외국어고 입시에서는 지필평가를 폐지하고 수학․과학의 과도한 가중치를 합리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책이 밝혀지자, 지난해 10월 특목고 운영 정상화 및 입시개선방안 등에 포함됐다가 흐지부지된 정책이 재포장된 ‘재탕, 삼탕’ ‘학원의 기만 살리는 사교육 정책’ ‘사교육을 잡겠다는 전략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심지어 공청회 개최 결과를 보고 ‘맹탕 공청회’란 야유까지 나왔다.
교과부는 교육정책의 기본을 ‘경쟁과 자율’에 두고 지난해의 4․15 학교자율화 조치에 이어 지난 5월 1일에도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화와 교원인사 자율화, 자율학교 확대 등 폭넓은 학교자율화 정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교육대책에서만 이러한 기조와 달리 특목고 입시를 강력하게 규제한다면, 이는 교과부 스스로 교육정책의 기준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다. 즉 학교자율화의 기본취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외국어고와 과학고의 설립목적에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우수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는 학교가 특별한 주목을 받는 현상을 사교육대책의 주안점으로 삼는다면, 교과부는 앞으로 더욱 확대해나가겠다고 발표한 수많은 자율학교 중에 그러한 학교가 생길 경우 또 어떤 방법으로 규제할 것인지 미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당면한 현상에 초점을 둔 정책을 마련하는데 급급하여 단기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한 미봉책을 마련한다는 비난을 자초하기보다는, 학교교육 전반의 개선, 대학입시 개선, 세계적인 대학 양성 같은 기본적인 정책의 구현에 힘써야 한다. 조급하더라도 우선 공교육을 강화하고 사교육을 억제하는 정책의 기준을 마련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장기적이고 강력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기준, 원칙에 바탕을 둔 정책이라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우리가 학교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가져야 할 지식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교육의 지향점에 관심을 가진 국내외의 석학들이 주장하는 ‘창의력’ ‘사고력’을 드높이는 교육이 전개되어야 한다.
KAIST로부터 비롯된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올해 말까지 사교육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교과부 고위관계자는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이제까지 사교육비가 줄어든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교육정책을 사건기사 취급하는 언론의 질문도 유치하지만 교과부도 교육정책의 기본에 소홀하여 대책다운 대책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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