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의 전쟁’, 그 승부처
2001년 8조117억원, 2002년 9조3258억원, 2003년 11조6918억원, 2004년 12조8559억원, 2005년 13조7517억원, 2006년 15조6571억원, 사교육비의 이 가파른 증가추세를 능가할 만한 것은 거의 없다.
‘학교만족 두배, 사교육비 절반’,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공약이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사교육비는 2008년에도 18조7230억원으로 2007년보다 1조3295억원이 늘었다. 대통령 공약이 아니어도 교육과학기술부와 전국 교육청에선 사교육대책을 비중 높게 다루어왔지만, 한 번도 효과를 나타낸 적은 없었다.
심정으로는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나섰다. “올 여름방학부터 밤 10시 이후엔 학원교습을 못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경찰까지 동원해 대대적 단속을 펴겠다”고 했다. 그는 ‘불법․고액과외 신고포상제 및 세무조사’와 함께 ‘방과후학교 경쟁력 강화’ ‘외고입시, 수학․과학 가중치 폐지’ ‘입학사정관제 확대’ 등 공교육 강화 대책도 연달아 발표함으로써 이 시책의 구상을 구체화했다. 심지어 ‘방과후학교’를 통째로 학원에 맡길 수도 있다는 과감한 대책도 내놓았다.
과외를 전면금지한 전두환 정부시절이 떠오를 만큼, 그는 단호하고 비장한 태세를 보였다. “정권차원에서 처절하게 붙겠다” “이 정부는 결국 교육과 부동산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외고의 서울대 가는 KTX 역할을 고치겠다” “장렬히 전사해도 좋다” “나는 우당탕하면서 과감하게 하겠다” “눈치만 보면 아무것도 못한다”….
너무 나간 것일까. 그는 “관료들이 바로 개혁의 걸림돌”이라고 했지만, 교과부 장차관은 혼란을 이유로 “자제할 것으로 믿는다”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여야 정치권도 월권을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학원연합회에서는 불법․고액과외 조장요인은 두고 합법적 교육기관(학원)만 규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기다렸다는 듯 언론도 비판하기 시작했다. ‘미래기획위원장이 교육대통령이라도 되나’….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치열하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국내총생산(CDP)에서 차지하는 사교육비 비중이 늘 1위라는 통계가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왜 그런가? 우리 교육의 어디에 허점이 있는가?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밤새워 공부해도 늘 모자라는가? 그러면서 무슨 수로 봉사활동, 단체활동을 하고, 특기적성을 기르고, 여행과 독서를 할 수 있는가? 논리적으론 당연한 그것들이 현실적으론 왜 불가능한가? 왜 다른 나라 학생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무한대의 시간을 투입해야 대학에 갈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사고력, 창의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 10명 중 4.4명이 중도탈락을 하고 마는가?
계략(計略)을 없애는 것이 최상이며, 성(城)을 공격하는 것은 최하라고 했다. 이 ‘전쟁’의 승부처는 학원과의 전쟁에 있는 것이라기보다 그런 공부가 유리한 우리 교육의 시스템을 전환하는 데 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교육’은, ‘고비용 저효율’이건 말건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입할수록 유리한 고답적인 상황에선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논리일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학습부진아들을 위해 기초․기본교육을 강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는 고민거리도 아닌 창의력, 사고력을 갖춘 학생의 정체성을 연구해야 하며, 우리의 학교교육이 추구해야 할 지식의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전쟁’의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누가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를 주도하는가?’엔 관심이 없다.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예일대학 데이비드 겔런터는, 앞으로 50년 내에 학생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하며, 공부란 ‘계속되는 토론’이므로 ‘쓰레기 같은 지식’을 가르치는 현재의 학교들은 95%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학교’나 ‘학원’ ‘밤 10시’ 같은 논란은 참 어처구니없게 된다. 그러나 늘 이런 식이면 그때도 우리는 ‘사교육과의 전쟁’이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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