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현수막5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2019.3.21) 아파트 앞 초등학교 교문에 걸리는 현수막은 재미있다. 3월초에는 두 개가 걸렸다. "저 이제 학교 다녀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1학년 동생들아, 학교는 참 즐거운 곳이야!" 그 1학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급생인 아이들, 선생님들 얼굴도 보고 싶었다. 이 학교는 그런 현수막을 꼭 담벼락에 걸어서 아이들 키에 맞춰준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본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상투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높다랗게 거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속으로는 축하하지도 않으면서 누군가 시키니까 마지못해 지난해 현수막을 꺼내어 그대로 달아놓은 건 아닌지, 변명하기도 어려울 객쩍은 의심까지 해보았다. 졸업 시즌에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런 현수막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2019. 3. 21.
신명 날 리 없는 교사들 (2019.2.15) 겨울만 되면 교문 위에 달리는 현수막은, 보나마나 똑같은 "불조심 강조 기간"인 시절이 있었다. 그것까지 교장이 정할 이유도 없고 언필칭 창의성을 길러주는 곳이 학교니까 멀쩡한 아이들 두고 교장이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보하고, 지시·명령하고, 살펴보고, 관리·감독하는 곳이 상급관청이고 관내 행정기관이었다. 인용이 괜히 낯간지럽다. "화재 발생 빈도가 높은 겨울철을 대비하여 방화환경 조성을 통한 시민의 화재예방 및 안전문화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협조 요청하오니 안전하고 내실 있는 방화환경 조성 확산에 적극 동참"해 달라는 공문이 일찌감치 온다. 거기에는 "당년 11.1~익년 3.31 / 불조심 강조의 달(혹은 '화재!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 / ○○기관”을 3행으로 .. 2019. 2. 16.
멋진 현수막 Ⅰ K대 대학원 촉탁강사로 「교재연구개발론」 강의를 했습니다. 일반대학원이어서 수준을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한국 학생들은 질문을 할 줄 모르고, 토론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걸 누누히 듣고 있었습니다.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열여덟 명 중 대부분이 교육과정 전공 박사과정이었고, 나머지가 석사과정이었는데, 질문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잘 듣고, 토론도 진지해서 강의는 늘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다행인 것은, 꼭 결론을 내야 할 주제는 거의 없어서 강사로서의 역할은 겨우 다음에 더 이야기하자고 만류를 한 것뿐이었습니다. 어쨌든 한국 학생들은 질문도 못하고 토론도 못한다고 비난하는 교수들은 K대학 대학원에 한번 가보면 좋을 것입니다. Ⅱ 또 한 가지 특징은, 그 중 삼분의 이가 현장교사들이어서인지 이.. 2015. 7. 17.
현수막 구경 지금 팔고 있는 커피가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코리아노'라고 주장하는 가게입니다. 현수막이 너무 많아서 지나치기가 쉽고, '내가 지금 너무 소홀한 태도로 사는 건 아닌가?'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펴보면 '에이,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싶기도 하고, 써붙인 쪽의 마음이 까칠하기 때문인지 읽어본 뒤의 느낌이 개운치 않은 것도 있고, '저런 걸 막 붙여도 될까?' 싶더니, 관청에서 떼어낼 때까지 한시적으로 무슨 '번개시장'식으로 붙여놓은 것도 있고, '저 행사장에는 한번 가봐야 되는 건가?' 싶은 것도 있고, ………… 어쨌든 우리는 수많은 현수막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2013년 꼭 실천할 일 ― 대한민국 1호 바리스타의 '고종의 뜰'에서 커피수업을 신청한다!!" 이걸 보면서, .. 2013. 10. 21.
학교폭력예방 현수막에 관한 낭만주의적 해석 “학교폭력 예방하여 건전한 학교문화 이룩하자” 어느 학교 앞을 지나다가 본 현수막의 표어입니다. 공연히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걸 보고 ‘그래, 이젠 폭력을 하지 않아야지’ 할 아이는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에서는 지난겨울엔 이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러더니 지난 초봄에는 또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마디면 하라면, 좀 미안한 말이지만 차라리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불은 세상을 망쳐요!” 지난해 11월초부터 올 2월말까지 4개월간 우리 학교 교문에 내걸었던 불조심 현수막의 표어입니다. 4․4조가 아니어서 어색합니까? 표어는 지난해 2학년 4반이었던 허태훈이의.. 2009.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