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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트리크 쥐스킨트4

냄새를 분류해서 보관한 거대한 집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열린책들 1991)에서 이 부분을 찾으려고 또 읽었습니다. 어디 중간쯤에 나오는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다행히 62쪽쯤에 나왔습니다. 아예 여기에 필사해 놓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에는 깬 상태로, 그 후에는 꿈속에서 자신의 기억에 보관된 거대한 냄새의 폐허 속을 뒤지고 다녔다. 그는 수백만 가지의 냄새를 검사해서 체계적인 질서에 따라 배열했다.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 섬세한 냄새와 조잡한 냄새, 악취와 향기를 따로따로 분류했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 그의 분류는 점점 더 자세해져서 냄새의 목록은 더 풍부하게 세분화되었고 그 체계가 더욱 뚜렷해졌다. 이제 곧 처음에 계획한 대로 냄새의 건물을 짓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집과 담, 계단과 탑, 지하실과 방, 감추.. 2021. 6. 24.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Das Parfum》 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 《향수Das Parfum》 강명순 옮김, 열린책들, 1995(초판 14쇄) 소설도 이런 소설은 드물 것입니다. 향수(香水) 때문에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1738년 7월의 무더운 날, 파리의 뒷골목, 악취가 피어오르는 생선 좌판 밑에서 매독에 걸린 젊은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그 여인이 영아 살인죄로 처형당하여 유모들의 손을 거치며 자라게 됩니다. 유모들은 한결같이 그 아이를 무서워합니다. 지나치게 끈질긴 생명력과 탐욕에도 질리지만 아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이 공포심을 유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증오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흉측한 몰골을 갖게 된 그는 놀랍게도 아무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예민한 후각을 지니게 되고 남몰래 그 후.. 2017. 9. 22.
바다 냄새 그는 어머니가 단두대에서 참수된 그레브 광장에 갈 때도 있었다. 그 광장은 마치 커다란 혓바닥처럼 강 쪽으로 쑥 들어가 있었다. 그는 광장에 눕거나 강가로 가 보거나 혹은 기둥에 매여 있는 배에 다가가서 석탄이나 곡식, 풀과 물에 젖은 밧줄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러면 서쪽으로 강을 가로막고 있는 이 도시의 숲 속 길을 통해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다. 바람은 시골 냄새, 뇌일리 부근 초원의 냄새, 생 제르맹과 베르사이유 궁전 사이에 있는 숲의 냄새, 루앙이나 카엥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의 냄새를 실어 왔다. 가끔 바다 냄새까지도 실어 오는 경우가 있었다. 바다에서는 물과 소금, 그리고 차가운 햇살이 묻어 있는 돛단배 냄새가 났다. 바다 냄새는 단순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하고 독특한 냄새였기 때문에 그르.. 2017. 9. 5.
책 냄새 '수석연구위원'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드나들고 있는 한국교과서연구재단은, 건물 5층에 이사장과 사무국장, 과장 등의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고, 4층은 '교과서정보관'입니다. 그 정보관 한쪽에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방을 드나들며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금 재단의 목적에 기여하고 있는가?' 교과서정보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특유의 '냄새'가 납니다. 책들이 품어내는 그 냄새를 '향기(香氣)'라고 하고 싶지만 "책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향기라니……' 하고 터무니없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냄새'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에게는 싱싱한 빵 냄새나 담배의 향기(47년을 피우고 "끊어버린" 아, 그 담배!), 혹은 커피향처럼 언제나 좋기만 하고 싫증이 나지를 않는 냄새지만, 사무실을 .. 2012.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