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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코로나 198

어떤 여성일까? 45초간 수많은 사람과 건물 들이 땅속으로 사라진,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 지진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았다. "삶의 가장 은밀하고 잔인한 규칙이, 벽이 붕괴되고 넘어져 내부가 보이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처럼 드러났던 것이다." ‘삶의 가장 은밀하고 잔인한 규칙’이란 어떤 것일까? 그러한 드러남은 짧고 강렬한 지진의 경우에 더 심한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전 세계를 짓눌러 미증유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는 코로나 19와 같은 현상에서 더 심한 것일까?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고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되고 있다. 백신은 아무리 조급해도 절차에 따라 개발된다는 뉴스를 보며 초조해지고, 시인들은 시(詩)는 백신 .. 2020. 6. 9.
자신의 매뉴얼을 만들게 해주세요! (2020.5.6) 2019.10.4. 자신의 매뉴얼을 만들게 해주세요! 선생님! 아이들이 없는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면서요? 왜 아니겠어요. 일찍이 ‘코로나 19’만큼 무서운 건 없었잖아요. 비행기가 날지 않고, 가동을 중단한 공장도 있고, 가게엔 손님이 사라지고, 도서관·학원도 문을 닫고,.. 2020. 5. 6.
아름답게 춤을 추는 사람들 "우리는 불경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말했다. "유감이지만 여러분 모두를 내보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내 앞으로 줄을 서면 여러분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적도록 하겠습니다. 사정이 좀 나아지면, 제일 먼저 여러분에게 연락이 갈 겁니다." 사람들은 줄을 서기 시작했지만, 얼마 안 있어 서로 밀치고 욕을 해댔다. 나는 그 줄에 끼지 않았다. 나는 동료 노동자들이 충성스럽게 자기의 이름과 주소를 불러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바로 저런 인간들이 파티 같은 데서 아름답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물함으로 걸어가서, 흰 작업복을 걸어놓고, 국자를 문에 기대놓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찰스 부코스키 『팩토텀』(문학동네, 2017) 289~290. 동경만 해온 나라들이 '코로.. 2020. 4. 26.
선생님의 재택근무(2020.4.3) 선생님의 재택근무 박 교사 :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어요? 최 교사 : 엄청 어려웠어요. 처음엔 이럴 수도 있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일주일이 가고 또 일주일이 가고, 그러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교실을 들여다보면 걱정만 쌓이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던 시간들이 그리워지고… 나는 교사가 맞구나 싶어 눈물겨웠어요. 뭣보다 아이들이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무척 괴로웠어요. 박 교사 : 방안을 찾자고 채근하는 교장의 입장에도 동정이 가더라고요. 리더는 저렇구나.… 최 교사 : 캐나다 로키산맥 기슭의 어느 마을에서 근린공원 임시 갤러리를 마련했는데 거기에 한 초등학생이 써 붙인 ‘칩거 중에 내가 할 일’ 목록을 어느 블로그에서 봤어요. 할머니께 전화하기, 친구.. 2020. 4. 3.
진달래 1 산길에서 진달래를 만나는 이 나날이 속절없이 흘러갑니다. 처음엔 '또 진달래가 피네' 했습니다. 오늘은 또 생각했습니다. '다 피고 나면 어떻게 하나?' '봄이 다 가면 그때는 그럼 어떻게 하나?' 2 195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득한 그 어디쯤에서 진달래 꽃잎을 따먹고 있으면 입술이 새빨간 사람에게 잡아먹힌다고 했습니다. 내 빨간 간을 내가 보는 데서 꺼내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지만, 입술 붉은 그 사람은 분명 병자(病者)이니까 성치는 않을 그 몸으로 주춤주춤 다가오면, 미끈거릴 고무신을 얼른 벗어 들고 뛰어 달아나면 그만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달래 꽃잎 좀 따먹지 않고는 힘이 너무 들었는데, 그렇지만 입술이 퍼렇도록 그걸 따먹어도 배는 점점 더 고팠.. 2020. 3. 31.
서러운 나날의 일기 창밖의 저녁나절이 고요합니다. 그 좋은 사람들, 많기만 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햇빛만 좋을 뿐이어서 서럽습니다. "가까이 가지 않을게?" "응~" 우리는 그렇게 하고 헤어져 왔습니다. 2020. 3. 7.
온 생애의 수학여행 (2020.3.3) 온 생애의 수학여행 2009년 어느 가을 아침, 6학년 부장교사가 교장실로 뛰어들었다. “신종 플루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됐습니다!” “저런!” “어떻게 하죠?” “아이들 실망이 크겠죠?” “그럼요!” “대책을 세웁시다!” “어떻게요?” “가라면 가고 말라면 말고, 그러면 누가 교육을 어렵다고 하겠어요?” 그날 교사들은 예전에 모스크바의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동유럽 나라를 ‘가상 탐사’하는 여정을 정해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 문화, 언어, 일상생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리포트를 작성했더라는 ‘학급여행’ 이야기를 읽고(유네스코 핸드북, 1981), 3일간의 ‘경주 가상여행’을 구상했다. 카페를 개설해서 자료를 모으고 토론회, 가장행렬,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은.. 2020. 3. 3.
나를 서럽게 하는 '코로나 19' 밖에 나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앙증맞은 여자애와 아름다운 '엄마'가 서 있었는데 내가 나타나자 엄마가 아이를 저쪽으로 감추었습니다. 그들이 올라가고 난 다음에 따로 탈까 하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뒤따라 타버렸습니다. 유치원생 아니면 초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그 여자애가 잠시를 참지 못하고 몸을 흔들어대다가 내가 있는 쪽으로 기우뚱하자 몇 번 주의를 주던 엄마가 그만 사정없이 '홱!' 잡아챘습니다. 내가 서 있는 쪽의 반대쪽으로 낚아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었습니다. 전철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노숙자 냄새 때문에 일어선 일이 있었습니다. 그 노숙자가 생각났습니다. 그 엄마가 밉지는 않았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코로나 바이러스 사진(그림)은 어째.. 2020.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