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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친구의 죽음3

세이쇼나곤(淸少納言) 「승려가 되는 길」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이를 승려로 보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승려는 마치 나뭇조각인 양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길뿐더러, 공양 음식같이 맛없는 것만 먹어야 하고, 앉아서 조는 것도 비난을 받는다. 젊을 때는 이런저런 호기심도 있을 텐데 마치 여자라면 진저리라도 난다는 듯이 잠시도 곁눈질해서는 안 된다. 잠깐 보고 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도 없을 텐데 그것조차 못하게 한다. 수도승한테는 더욱 심하게 군다. 계속된 수행에 잠시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독경은 안 하고 졸기만 해"라며 금방 투덜거린다. 승려가 된 사람은 한시도 마음 편할 새가 없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하지만 이것도 옛말인 것 같다. 요즘은 너무 편해 보인다. 일본 헤이안 시대 이치조(一條) 천황의 중궁 데이시의 여방 세이쇼나곤이 지은.. 2023. 12. 12.
돈 : 나의 친구 J의 경우 내 친구 J는 저세상으로 간지 한참되었다. 평생 돈도 못 벌어본 채 한 많은 생을 비감하게 마감했다. 서울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올라왔다. 작심하고 푸줏간을 운영했다. '되겠지' '되겠지' 했겠지만 점점 더 되지 않았다. 대형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였는지 그의 푸줏간을 찾는 발길은 아주 드물게 되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살면서도 부인의 행색만은 남루하지 않게 해 주었고, 밖으로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는 날엔 단정한 모습으로 나왔고, 점잖은 용어로 조용조용 얘기했고,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어도(가령 어떤 교사가 학생을 두들겨 팼거나 아이에게 두들겨 맞아서 신문에 난 날 모임이 있으면 그들은 다짜고짜 내게 덤벼들었다. "야, 임마! 교육부 놈들 다 뭐하냐.. 2023. 11. 19.
弔辭 "종민아" 종민아. 오전에 내 아들이 내 핸드폰에 문자로 "최종민 선생님 돌아가셨습니다. 분당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9호실. 16일 발인"이라 찍어 보냈구나. 어떻게 알았냐니까 페이스북에 났더라고 했다. 그럼 네가 죽었단 말 아니냐? 이게 무슨 짓거리냐? 일 년 전 뇌에 혹이 생겨 수술 후에 너는 분명 경과가 좋다고 했지 않았나? 구례 국악 행사에도 다녀올 거라 하기에 올라오는 길에 안동 들러 쉬어 가라 했는데 그 후에 소식이 없어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 후 1년 여를 네 전화는 먹통이고 메일을 보내도 답이 없기에 수신확인을 했더니 열어보지도 않았더구나. 우석이, 오춘이, 보영에게 전화로 네 근황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더구나. 언제 시간 나면 경기도 너네 집으로 찾아가든가 실종신고라도 내야겠다는 .. 2015.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