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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추석4

백석 「흰밤」 백석 / 흰밤 녯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정본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 그야말로 가을밤, 추석입니다. 온갖 것 괜찮고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는 듯 오늘도 낮 하늘은 청명했습니다. 블로그 운용 체제가 티스토리로 바뀌자 16년째 쌓이던 댓글 답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그 바람에 그렇게 되었는지 오가며 댓글 답글 다는 일에 시들해졌는데, 그러자 시간이 넉넉해졌습니다. 나는 내가 없는 날에도 그 댓글 답글이 내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때로는 한 편의 글을 쓰기보다 정성을 들여서 댓글을 달고 답글을 썼습니다. 또 힘을 내야 할 것 같긴 한데 마.. 2022. 9. 9.
먼 곳 그대 추석이 가까운 날 저녁, 먼 곳 그대가 여기 와 있었습니다. 여기 내 책상 유리판 위에 그 모습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눈길을 돌리면 사라질까 봐 조심스러웠습니다. 2021. 9. 19.
「닻을 내린 그 후」 닻을 내린 그 후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찾아뵙지 못하고 세월 넘겨 찾아뵈오니 아버지 풀 속에 누워 씨를 뿌리고 계시더라 뫼풀들과 소곤소곤 얘기하시느라 본척만척 하시더라 이생의 모든 업 다 풀고 풀 되어 바람하고도 한 몸이 되어 춤추고 계시더라 못내 섭섭하여 모퉁이 돌아서서 훌쩍거렸지만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더라 소복소복한 뫼풀 울타리 안겨 꽃과 나비도 부르고 계시더라 이 시인은 최근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시인의 블로그에 가봤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시간여행 생이 오고 가는 시간 사이에 슬픔 기쁨 행복 누리는 안락함이 비바람 구름 폭풍을 만나면 엎어지거나 자빠지거나 넘어지거나 미끄러져 찍힌 상처도 모두 내가 밟고 지나왔거나 지나가는 길 많은 실수와 잘못함으로 .. 2020. 9. 29.
2013년 秋夕 2013년 秋夕 ♬ 아내는 열흘쯤 전부터 제사, 차례 준비를 합니다. 가령 약주, 건어물, 식용유, 햅쌀, 한과 같은 건 미리 한가한 마음으로 사두어야 서두르지 않게 되고, 제값을 주고 살 수 있고, 양도 속지 않고, 무엇보다 정성들여 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세 군데의 시장을 둘.. 2013.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