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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천지무획3

다시 태어나면 교사가 되지 않겠다는 선생님을 생각함 (2023.5.26)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겠다고 하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선생님! 그런 줄 알면서도 정작 "다시 태어나면 결코 교사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셨다는 기사를 읽으며 쓸쓸하고 허전했습니다. 다시 태어날 리 없다는 걸 염두에 두신 걸까요? 우스개 같지만 정작 다시 태어나게 되면 그때 결정하기로 하고 이번 생에서는 속상하게 하는 아이들, 학부모들, 걸핏하면 섭섭하게 하는 행정가들 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대답하신 건 아니었을까요? 교사 생활이 쉬울 리 없지요. 누군들 짐작하지 못할까요. 말하기 좋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다 알죠. 하필이면 행정가들은 잘 모릅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도 맡은 일이 따로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그.. 2023. 5. 26.
「풍경의 깊이」 풍경의 깊이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 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2012. 2. 20.
마지막 편지 ⑴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99 마지막 편지 ⑴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 정현종,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읽기」(현대문학, 2007년 7월호)에서 - 이제 마지막 편지입니다. 2학기 시업식을 마치고 현관이나 복도에서, 교실에서 '고물고물' 아이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화창한 날의 바지런한 개미 떼 혹은 외포리 그 해안의 자유로운 갈매기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전선 위에 모여 앉아 재재거리는 새떼처럼 정다운 모습들이기도 합니다. 무얼 그렇게 즐거워할까요, 저는 가야 하는데……. 이 더위가 물러가면 곧 저 '해오름길'의 가로수나 교정의 활엽수들이 하루가 다르게 다시 다른 고운 빛깔로 그 싱그러움을 바꾸어가겠지요. 그러고 보니 새로 심은 .. 2007.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