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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전문가4

전문가들의 시대 혹시 만물박사가 사라진 것에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시대가 특정한 업무, 가령 역청의 보관이나 배에 화물을 선적하는 컨베이어의 건설 같은 업무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인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슬픔이 좀 덜어질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인체의 간 효소의 활동만 연구하는 의대 교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나 또는 세상의 학자들 가운데 수백 명은 오로지 프랑크족 역사 중에서도 메로빙거 왕조 후기만 연구하면서 그 결과를 튀빙겐 대학 인문학부에서 발간하는 학술 정기간행물 《중세 고고학》에 발표한다는 사실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알랭 드 보통이 쓴《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읽었다(23~24).그런 전문가들을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고? 무슨 위로?고색창연한 연구실에 들어앉아서.. 2024. 12. 1.
교사가 전문직인가? (202.11.24) 교사 출신이라 그런지, 의사가 환자의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고 상태가 좋다고 하면 벌떡 일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의사에게 감사할 일인가, 관리를 잘한 건 본인 아닌가, (혹은) 다른 의료진이 검사했는데 인사는 의사가 받는구나, 공연한 심술이 나고 의사는 좋겠다, 부러워하면서 교사 시절에 그런 인사를 받아봤는지 되돌아보곤 한다. 의사만도 아니다. 겨울철로 접어들었는데 수도 배관에 무슨 탈이 났는지 내내 잘 나오던 따뜻한 물이 갑자기 생각을 바꾼 듯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헛일이면 내가 평소 이 간단한 것에도 관심이 없었구나 싶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일상생활이 그처럼 순조롭게 흘러온 데 대한 무관심이 벌을 받은 것처럼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 2023. 11. 24.
전문가 보일러가 이상했습니다. 방 1이 따뜻하면 방 2가 냉방이 되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방 2가 따뜻해지면 돌연 방 1이 냉방이 되었습니다. 방 1, 2가 골탕을 먹이자고 약속해놓고 번갈아가며 약을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방 1, 2의 온도조절기를 동시에 켜놓고 약 한 달간 그런 현상을 겪었으므로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방 1에서 지내다가 2, 3일 후에는 방 2에서 지내야 하는 게 성가시고 한심했지만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기거하는 방은 딱 둘이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꼴이어서 오늘은 방 1에 이부자리를 마련하고 내일은 또 방 2에 이부자리를 펴면서 이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보일러 관계자들은 그럴 리 없다고 했습니다. 이곳.. 2021. 6. 15.
《당신이 옳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해냄 2018 1 상처는 속마음에 꽁꽁 숨겨져 있다. 드러내면 더 불리해지고 더 수치스런 일이 생길 것이라는 피해 경험 때문이다. (…) 억누르려고 해도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거나 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해지는 고통도 많다. 그런 경우는 상처를 꺼내고 해결해야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150~151) 감정을 드러내는 걸 유치하다고 여기고 이성으로써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건 버려야 할 믿음이다. 그걸 도와주는 방법이 '공감'이다. '공감'의 방법은 "당신이 옳다"는 관점이다.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든 감정은 옳다. 모든 감정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 2019.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