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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저승 가는 길4

저승 가는 길 저승 가는 길을 그려봅니다. 저승은 분주한 곳이 분명하지만 경계가 삼엄하고 조직이 치밀한 한 곳이 아니라 쓸쓸하거나 썰렁하다 해도 이미 그곳을 찾아가야 할 사람은 찾게 되어 있으므로 무슨 대단한 환영식 준비하듯 여럿이 나를 데리러 오진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저승으로 오라!"는 그 통지를 무시하면 어떤 조치가 내려지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시지프의 신화에서 읽은 바 있습니다. 가야 할 사람은 어떻게든 가야 하고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까만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기묘하게 화장을 한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래 봤자 한두 명일 것이고, 십중팔구 혼자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안내될 테니까(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내 엄마도 갔고, 중학교 1학년 봄 .. 2021. 3. 23.
혼백이 오는 날 블로그 『봄비 온 뒤 풀빛처럼』에서 「배웅」이라는 글을 읽다가 최근에 『浮生六記』(沈復)에서 혼백이 오는 날에 대한 글을 본 것이 생각나서 두 글의 일부를 각각 옮겨놓았다. (전략) 사돈의 팔촌보다도 인연이 없는 초면의 언니 시댁 형제, 조카들과 함께 화장장으로 갔고, 같은 상에서 아침 식사도 했고,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모두들 각각 헤어지기 전에 일반 식당에서 점심 식사도 같이했다. 일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는 그분들도 긴장이 풀려서 웃으면서 점심도 맛나게들 자셨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다사다난한 일생을 살다가 가시는 길에 한 사람이라도 배웅을 하는 사람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 어색한 자리에 함께했던 것이고. 「배웅」에서(『봄비 온 뒤 풀빛처럼』원문 보기 ☞ http://blog.daum.n.. 2019. 11. 27.
백석「쓸쓸한길」 쓸쓸한길 거적장사하나 山뒤ㅅ녚비탈을올은다 아 ── 딸으는사람도없시 쓸쓸한 쓸쓸한길이다 山가마귀만 울며날고 도적개ㄴ가 개하나 어정어정따러간다 아스라치전이드나 머루전이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흐린날 東風이설렌다 ― 『정본 백석 시집』(백석 지음/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 1판16쇄), 207쪽.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보와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해방 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위의 책 날개에서 * 낱말풀이(이 시집 49) 거적장사 시신을 거적으로 대충 말.. 2013. 4. 6.
「死者의 書」 죽어 있다는 건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또 살이 물러지고 새로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달리 할일도 없다. 메리 로취라는 사람은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스티프 STIFF』(파라북스, 2004, 권루시안 옮김, 9쪽)에서 주검 혹은 죽음 이후의 상황을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짤막한 문장에서 "누워서 지낸다"느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느니 "새로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느니 "할일도 없다"느니 어쩌고 하며 겉으로는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 한 책의 제목에서처럼 주검에 대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따듯한 눈길로 바라보듯 했지만, 사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하게, 차갑게 그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2.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