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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장욱3

이장욱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이장욱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진리와 형이상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초중등학교 때는 우주의 신비와 시를 배웠지.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연애도 했는데 또 독재자를 뽑았구나. 춘천에는 호수가 있고 산이 있고 깨끗한 길이 있지. 여자와 남자와 개들과 소풍이 있고 할머니도. 인사를 하고 밥도 먹었네. 나는 춘천에 들렀다가 그리스와 신라시대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저는 종교적인 인간이라 매일 기도를 합니다만 고백성사를 한 뒤에 영성체를 모셔야 합니다만 아아, 유물론이 옳았다. 춘천에서 나는 죽어가는 시절의 고독을 떠올리고 사후의 무심을 생각하고 길거리의 개들과 눈을 맞추었네.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가는 일 그것은 할인마트에 내리는 석양처럼 신비로운 일 낮잠에서 .. 2018. 4. 20.
이장욱 「원숭이의 시」 원숭이의 시 이장욱 당신이 혼자 동물원을 거니는 오후라고 하자. 내가 원숭이였다고 하자. 나는 꽥꽥거리며 먹이를 요구했다. 길고 털이 많은 팔을 철창 밖으로 내밀었다. 원숭이의 팔이란 그런 것 철창 안과 철창 밖을 구분하는 것 한쪽에 속해 있다가 저 바깥을 향해 집요하게 나아가는 것 당신이 나의 하루를 관람했다고 하자. 당신이 내 텅 빈 영혼을 다녀갔다고 하자. 내가 당신의 등을 더 격렬하게 바라보았다고 하자. 관람 시간이 끝난 뒤에 드디어 삶이 시작된다는 것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동물원의 자정이 온다는 것 당신이 나를 지나치는 일은 바로 그런 것 나는 거대한 원숭이가 되어갔다. 무한한 어둠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꽥꽥거리며 외로운 허공을 날아다녔다. 이것은 사랑이 아닌 것 그것보다 격렬한 것 당신의 .. 2017. 8. 31.
식물성 사유와 동물성 사유 죽음을 구체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 봄, 이 여름이 마지막 봄, 마지막 여름일 수도 있겠구나 하게 되고 그럴 때는 그 봄, 여름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피어나는 잎, 무성해지는 나무가 '무심하게' 보입니다. 속물이어서 별 수 없겠지만 '언제까지나 저렇게 피어나겠지' 하고 내가 없는 세상의 봄, 여름을 떠올립니다. 이런 생각을 쓸 때마다 '일언지하'에 '깔아뭉개는' 댓글을 봅니다. '내년에도 죽지 않고 또 맞이할 봄'이라는 의미이거나 '죽더라도 높은 분의 뜻에 따라 보다 높은 세상에서 다시 무엇이 되겠지만 그런 건 제쳐놓더라도 육신은 적어도 저 식물들의 거름은 된다'는 의미이거나 기껏해야 '저 잎도 사실은 지난해의 잎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럴 때 나는 그 뜻을 짐작.. 2017.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