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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이언 매큐언2

"파충류" 혹은 "틀딱충" 1 불치병을 앓는 젊은 여성이 '경로석(?)'에 앉아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가 다짜고짜 그 여성의 뒷덜미를 쳤답니다. 그 얘기는 아내가 텔레비전에서 보고 해주었습니다. 구체적인 얘기였는데 지금 내겐 경로석(혹은 장애인석, 임산부석, 영유아 동반자석……)에 앉은 여성과 그 여성의 뒷덜미를 쳐버린 노인의 이미지만 남아 있습니다. 2 강 하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부터 서서히 고개를 돌려 상류의 빅벤에 이르기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런던의 아름다운 관광명소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두통과 피로는 계속되겠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겉으로는 아무리 쇠약해 보일지라도 과거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젊은이들에게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우리 같은 .. 2018. 2. 11.
이언 매큐언 《속죄》 이언 매큐언 Ian McEwan 장편소설 《속죄 Atonement》 한정아 옮김, 문학동네 2015 1 "담배 다 젖겠다. 꽃이나 뽑아서 들고 있어." 로비는 갑자기 남자의 힘과 권위를 자랑하고 싶어진 듯 사뭇 명령조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세실리아로 하여금 꽃병을 쥐고 있는 두 손에 더 힘들 주게 만들 뿐이었다. 그녀는 꽃을 꽂은 채로 꽃병을 물에 담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자연스러운 꽃꽂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설명할 시간도 없었고, 또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녀는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몸을 비틀어 로비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꽃병 주둥이의 한 부분이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듯 툭 하는 소리를 내며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두 개의 삼각형으로 쪼개져 물.. 2017.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