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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유희경3

누구를 위해 똑바로 서서 큰소리로 말해야 하나? 《콰이어트》(수전 케인)라는 책에서 "가장 효율적인 팀은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건전하게 섞여 있고, 리더십의 구조도 다양하다."는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교육이란 끝이 없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수십 년 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혼자서 가슴 아파했다. 그 책을 다 읽고 나는 이렇게 썼다. 반성문이었다. 나는 자신이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인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외향적이기도 하고 내향적이기도 한 것 아닐까 싶고, 얼마나 내향적인가 혹은 얼마나 외향적인가로 측정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그렇다 해도 나는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알쏭달쏭한, 애매한, 어정쩡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2024. 12. 15.
유희경 「이야기」 "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조용히, 심지어 아름답게 무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희경 그해 여름엔 참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딱따구리와 함께 보낸 장마 기간을 잊을 수 없다 빨간 머리의 딱따구리는, 적어도 내 방에서만큼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책장에 구멍을 내거나 구멍을 내는 소리로 나를 깨우지도 않았다 나는 더러 그가 딱따구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딱따구리였다 시내 큰 서점에 가서 사 온 커다랗고 비싼 조류도감에도 한 치 다를 바 없는 그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으니까 딱따구리가 때론 포유류의 머리를 공격해 뇌를 파먹기도 한다는 경고를 그 책에서 읽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머무는 동안 나는 희미하고 끈질긴 두통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머리의 이쪽저쪽을 만져보면서 딱따구리.. 2024. 5. 23.
유희경 「이야기 "이렇게 섬세한 짜임새를 내가 어떻게 찢어버릴 수 있으랴."*」 이야기 "이렇게 섬세한 짜임새를 내가 어떻게 찢어버릴 수 있으랴."* 유희경 대수롭지 않은 책을 읽던 k는 문득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파가 교란될 때 들리는 소리. 예민해진 탓이야, 중얼거리고 k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글자도 나아갈 수 없었다. 소리가 좀 더 선명해졌다. k는 책을 내려놓고 꼼꼼하게 책상 위 모든 물건에 귀를 대보았다. 소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고 무언가 있어 여기. 이야기에 익숙한 독자라면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소리는 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k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책 속에 무언가 들어간 게 아닐까. 책장을 털어보고 냄새도 보다가 마침내 48쪽에서 그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글자 하나 없이 비어 .. 2022.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