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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위안4

가을 밤하늘 저 오리온 자다 깨면 생각들이 떠오를까 봐 두렵다. 생각들은 하나씩 하나씩 의식의 안으로 들어온다. 그제 밤에는 차라리 얼른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지난여름까지 밤새 보안등을 켜놓던 개울 건넛집도 가을 들어서는 깜깜하다. 하늘. 이제 빛을 보여주는 건 저 하늘뿐이다. 오리온 대성운은 새로운 별이 탄생하는 곳 중에서 가장 가깝고 넓다는데도 거기 가려면 1500광년이 걸린단다. 9조 5천억 km×1500=...... 얼마나 먼 곳일까. 머나먼 곳 저 별들이 정겹게 깜빡이고 있다. 부디 사라지지 않기를...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썼다. "우리의 좌절, 우리의 상심, 우리에게 전화하지 않은 사람을 향한 우리의 증오, 우리를 스쳐 지나간 기회에 대한 우리의 미련 같은 것들을 그런 우주의 이미지.. 2023. 10. 3.
2015 가을엽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가을강변이 향수를 불러옵니다. '강변'은 끝없는 노스탤지어로 남을 것입니다. 원두막에서 가을바람을 맞고 있는 옥수수는 올해도 영글어서 어김없음에 위안을 느낍니다. 여름하늘은 저렇지 않았습니다. 구름은 우리의 복잡한 사정도 다 살펴가며 흘러가다가 갑자기 바람이 스산해지고 순식간에 2016년이 올 것입니다. 기한을 정해 놓은 것처럼 초조해집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서장의 책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2015. 9. 13.
위화 『인생』 위화 『인생 活着』 백원담 옮김, 푸른숲 2009 푸구이 노인의 기막힌 인생 역정입니다. '뭐 이런 인생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는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야기 속의 '도련님'이 흔히 그렇듯 그는 마치 그 풍요로운 생활을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는 듯 계집질, 도박을 일삼았고, 그 못된 버릇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해서 아이를 가진 아내까지도 눈앞에 보이는 대로 구박했습니다. 그러다가 전문 도박꾼 룽얼에게 걸려들어 단숨에 전 재산을 빼앗기고 하루아침에 헐벗고 굶주리는 농부로 전락합니다. 상심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에게 알릴 겨를도 없이 군대에 잡혀가 갖은 고초를 겪었으며, 겨우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딸 펑.. 2014. 2. 21.
오며가며 Ⅰ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가다가 수락산이 보일 때쯤에는 얼른 눈을 들어 창 너머를 살핍니다. 그 철로변에는 볼 만한 경치가 수두룩합니다. 언젠가(someday) 책을 들지 말고 좀 한가한 마음으로 이쪽 창가와 저쪽 창가에 앉아 오고가며 그 경치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작정입니다. 이 생각은 오래되었는데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 중의 한 가지입니다. 한강도 언제나 참 좋은 구경거리입니다. 아침나절에 햇빛이 비치는 모습은 상류 쪽이나 하류 쪽이나 다 좋고, 저 멀리 강변 풍경들도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저녁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을수록 그만큼 더 좋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우울해 보입니다. 전철을 타고가다 보면 이 경치를 일삼아 구경하는 승객들이 많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괜히 내 마음도 밝아집니다... 2012.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