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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애완견6

영혼 ② 호통치는 강아지 살아 있는 '진짜' 강아지인데 태엽을 감아 놓으면 "멍! 멍!" 짖으며 방바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하얀 장난감 강아지 같았다. 너무 더워서 일거리를 가지고 냇가로 나온 할머니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왜 기웃거리고 있느냐"는 듯 내 오른쪽에서 녀석을 내려다보는 노인을 부릅뜬 두 눈으로 꾸짖고 있는데, 딴에는 앙칼지게(그래봤자 앙증맞게, 그러니까 귀엽게) 짖어대는 중이었다. 하도 용을 써며 짖어서 앞뒷발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번갈아 뛰어올랐다. 저게 어떻게 무슨 짐승이나 새를 쫓을 때 한 발을 쾅 쾅 구르며 위협하는 사람처럼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강아지는 한 발로 구르는 게 아니라 두 발, 아니 네 발을 다 써서 그렇게 구르며 호통을 치고 있어서 더욱 앙증맞고 귀엽고(딴에.. 2024. 3. 4.
영혼 ① 빵집 앞 강아지 빵집 앞에서 저 강아지가 네 박자로 짖고 있었습니다. "왈왈왈왈 ○ ○ ○ ○ 왈왈왈왈 ○ ○ ○ ○ 왈왈왈왈 ○ ○ ○ ○ .............................." 나는 빵집을 나오자마자 바로 저 모습을 보았는데 강아지는 빵집을 향해 똑바로 서서 네 박자씩 줄기차게 짖어대고 있었습니다. 여기선 보이지 않지만 유모차 안에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 이 강아지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짖고 있을까? - 자신이 주인보다 윗길이라고 여기고 강압적으로 명령하고 있는 걸까?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당장 나오지 않고!" - 아니면? 애원조로? '제발 빨리 좀 나오세요. 부탁이에요~ 초조해 죽겠어요. ㅜㅜ'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짖는 모습이나 그 목청으로 보면 아무래도 "들어간 .. 2022. 9. 8.
친구 걱정 1 '저 친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이쪽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진짜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일전에 '저 친구'의 친구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2 피자는 내가 두 조각, 내 친구가 다섯 조각을 먹어서 한 조각이 남았습니다. 내 친구는 피자가 있는 식사를 좋아합니다. 파스타와 샐러드는 내가 더 많이 먹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먹으며 말을 하고 이젠 깔끔하지 못한 면이 있어서 아무래도 비위생적인 장면도 연출하곤 합니다. 내 친구는 만나자는 약속도 좋아하지만, 그만 일어서자는 제안도 좋아합니다. 얼른 '저 친구'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거의 매일 나들이를 했지만, 책을 읽으며 '저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 되었다고.. 2019. 4. 11.
내 친구의 친구 내 친구의 친구입니다. 내 친구는 내가 이 보드라운 친구를 만져보는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친구는 내가 보드라운 자신을 만져보는 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쪽은 내가 그렇게 하는 걸 좋아하는데, 다른 쪽은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문제입니다. 내가 읽은 개에 관한 책에는 이 우선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내 친구는 요즘 책을 읽으며 이 친구와 소일하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 친구는 내 친구에게 복종하는 친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복종시키고 복종하는 건 역겹습니다. 그런 장면은 기가 막힙니다. 2018. 1. 30.
개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 개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 『철학자와 늑대』를 읽을 때, 밑줄 그어 놓은 부분입니다. 물건 같으면 아까워서 남 빌려주지 않고 혼자 써야 할 만큼 소중한 내용입니다. 이런 것은 정녕 물건보다 소중한 것인데 이제 나는 개와 함께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그만 공개하고 말기로 했.. 2016. 11. 6.
미즈바야시 아키라 『멜로디 Melodie』 미즈바야시 아키라 『멜로디 Melodie』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2016 집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 딱 들러붙은 한 몸처럼 느꼈다. 아침이면 나는 또 다른 의식의 순간을 가졌는데 식사하기 전에 멜로디는 내가 맛있게 먹으라는 명령을 내릴 때까지 사랑이 짙게 밴 인내심으로 먹기 전까지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내가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할 때면 대체로 멜로디는 내 발치에서 세상에서 가장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졸았다.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거기에서 멜로디는 오페라와 실내음악을 전문으로 방송하는 라디오에서 하루 종일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어떤 때는 신중히, 어떤 때는 심드렁하게 들었다. 그의 취향은 나와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나의 취향이 그의 취향이 되었다.(202~203) .. 2016.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