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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아버지4

이영주「구름 깃털 베개」 구름 깃털 베개 ​ ​ 이 영 주 ​ ​ 부드러운 광기로 가득 차 있어. 깃털 같은 광기. 아버지는 한동안 베개를 만들었는데 하얀 솜이 아버지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에 깃털이 돋았지. 아버지, 인공 구름을 끌고 온 자. 인공 구름으로 가득한 베개를 베고 잠이 든다는 것. 나는 가끔 공중에 떠 있는 관에서 잠들었고 깨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내 머리맡에 흩어진 구름 조각을 세탁기에 돌렸지. 실패한 조각은 표백을 해야 한다. 나는 세탁기 통에서 돌돌돌 깃털이 돌아가는 표백인. 아버지는 듬성듬성한 내 깃털 밑에서 죽음을 연습하지. 지난 일주일 동안 죽었다고 하지. 부드러운 광기가 베개 안에 스며들고, 나는 남은 깃털이 모두 빠졌지. 깃털은 역시 인공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드러운 소재로 광기를 꾸며야 한다. 나는 .. 2022. 8. 30.
눈물 너머 아카시아꽃 # 1 내 형제 중 한 명이 다 없애버렸지만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를 제외하고는 매년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4학년 담임 ○인○ 선생은 우등상은 자신이 거주하는 그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상 따위는 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걸핏하면 매질을 했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 그 짓을 자주 했는데 자신이 맞을 매를 자신이 준비해오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가느다란 것, 짧은 것을 가져오면 선생이 갖고 있는 매로 때리겠다고 해서 손가락 세 개 정도 굵기는 되어야 만족했습니다. 나는 늘 매 맞을 아이들 중 한 명이 되었는데 내가 뭘 잘못한 것인지 그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선생이 풀지 못하는 산수 문제를 말없이 풀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데 아이들은 .. 2022. 5. 25.
아버지 아버지는 내게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유엔, 이건 내 체질이 아니야. 그저 떠드는 것, 항상 떠드는 것뿐이라니까. 나란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이해심 깊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네 하루는 어땠니?」 「항상 그게 그거.」 「학교에서는 1등, 발레에서는 별로 빛을 못보고?」 「응. 하지만 나는 무용가가 될 거야.」 「물론이지.」 아버지는 그냥 말뿐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내가 외교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걔는 나를 닮았거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배고픔의 자서전』의 한 장면입니다.* 이 산뜻한 대화를 읽고 한참 동안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악당들도 임자를 만날 때가 있다. 지금도 기억난다. 언젠.. 2020. 3. 23.
텔레비전이나 보기 2018.1.10 딸아이가 돌아갔습니다. 지난해 12월 9일에 와서 달포쯤 있다가 오후 6시 반에 이륙한 비행기를 탔는데 밤이 이슥하지만 아직 반도 가지 못했습니다(2018.1.13.토. 22:58). 항공로를 모르니까 어디쯤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항에서 돌아와 괜히 걔가 있던 방을 들여다보다가 텔레비전 앞에서 꼼짝 않고 세 시간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뭘 하긴 해야 하는데…….' 강박감인지 평생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그 느낌이지만 정작 꼭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오늘은 그 앞에 더 오래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확인해보면 흘러갔고 또 흘러가고 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쉬지 않고 그 걸음으로 가고 있을 뿐이고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니까 이렇게 지낼 뿐입니다. 바보처럼 하고.. 2018.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