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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소동파4

'나를 잊는다'(物我) 연전에『소동파 평전』(왕수이자오)에서 제화시(題畵詩)에 대한 내용을 보았다. 평전을 쓴 왕수이자오는 소식(蘇軾)의 제화시 가운데에는 그의 고도의 예술적 표현력이 두드러진 것과 투철한 예술적 견해를 나타낸 것이 있다면서 후자의 예로 문동(文同)이 대나무를 그린 정황을 서술한 시를 보여주었다(203~204). 여가與可가 대나무를 그릴 때 대나무만 보고 사람을 보지 않는다. 어찌 사람만을 보지 않으리? 멍하니 자신의 존재조차 잊어버렸다. 그 몸이 대나무와 함께 동화되어 청신함이 무궁하게 솟아 나온다. 이제 장주莊周가 세상에 없으니 누가 이러한 정신 집중의 경지를 알리오. 與可畵竹時, 見竹不見人. 其獨不見人, 嗒然遺其身. 其身與竹畵, 無窮出淸新. 莊周世無有, 唯知此疑神. 이 글을 읽는 중에 이번에는 화가 이우환.. 2021. 4. 18.
시화동원 詩畵同源 2018.12.26(수) 영등포 왕수이자오의 『소동파 평전』에서 놀라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을 논하는데 형체를 그대로 본뜨기를 주장한다면……". '아니, 사물을 형체 그대로 그리지 않았단 말인가?' 그 부분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지금 이 문장이 정말 그렇게 쓰인 것인지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움'이란 부끄럽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이었습니다. 동양화, 그러니까 우리나라나 중국 같은 나라들의 옛 그림(물론 지금은 동양화를 그리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고, 일단 옛 동양화), 그 동양화를 감상해본 적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 화풍이 다양하다는 건 상식인데 어떻게 해서 나는 옛사람들은 사물을 사진 찍듯 그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 2018. 12. 28.
"나는 너와 어째서 이렇게 친밀한가(與汝定何親)" "나는 너와 어째서 이렇게 친밀한가(與汝定何親)"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시를 '화도시(和陶詩)'라고 한다는데 소동파는 120여 수에 달하는 화도시를 남겼다고 한다. 『소동파 평전(왕수이자오)』에는 「도연명의 '잡시' 11수에 화운하여」(和陶雜詩十一首)가 소개되어 있었다. 비낀 햇살이 .. 2018. 12. 9.
퇴고 2018.7.12. 블로그에 실어두면서도 그런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으면 읽는 사람이 적었으면 싶은 글이 있고, 일반적으로는 읽어도 그만 읽지 않아도 그만인 글들이다. 이에 비해 '왜 이렇게도 읽지 않을까?' 싶은 글도 있다. 대체로 쓰기는 어렵고(그만큼 애를 쓴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일쑤 따분해서 읽기는 어려운 글이 그렇다. 오늘도 신문사에 논단 원고를 보냈다. 무더위 속에 원고를 쓰고 고치고 하면서 몇 번을 졸았는지 모른다. 그렇긴 하지만 윤문은 겨우 여남은 번밖에 하지 못했다. 이런 글 중에는 아마도 마흔 번, 쉰 번은 읽으며 수정하고 또 수정한 경우도 있다. 그러면 뭘 하나, 열 번 고치면 뭘 하고 쉰 번 고치면 뭘 하나……. 이렇게 읽고 고치고 또 읽고 고치고 해서 마.. 2018.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