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삶과 죽음7

존 윌리엄스 《STONER 스토너》 존 윌리엄스 《STONER 스토너》 RHK 2020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서평 중에는 지루하더라는 것도 있었지만 가장 흥미로웠고 한 권만 다시 읽는다면 지금은 이 소설을 선택할 것 같다. 스토너는 열정적으로 살았다. 최선을 다했다. 농부의 아들로 친척집에서 알바를 하며 다락방에서 공부를 했고 부모의 기대는 농사일을 물려받는 것이었으나 아처 슬론 교수가 보여준 열정에 따라 대학에 .. 2021. 12. 21.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 2005 장영희 교수는 유방암의 전이가 척추암이 되어 세상을 떠나기까지 동경의 대상이 되어 주었습니다. 젊었던 날들, 장왕록이라는 번역자의 이름을 자주 보았는데 장 교수가 그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습니다. 신문의 칼럼에서 그 이름이 보이면 열심히 읽었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은 왜 그랬는지 읽다가 말았고, 독자들이 '아,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을 찾도록 해 달라는 신문사의 주문으로 쓴 칼럼을 엮었다는 이 책은 아예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2021. 12. 6.
혼자 가는 길 여기는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동쪽으로는 마당 건너편 계곡이 숲으로 이어집니다. 새들의 희한한 대화를 들을 수 있고 모기 같은 벌레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저녁을 먹고 현관을 나서는데 때아닌 매미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둠이 짙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워낙 조용하니까 내 이명(耳鳴)이 또 장난을 하나?' 멈춰 서서 작정하고 들어 보았습니다. 날개로 땅을 쓰는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아! 소리는 바로 발밑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스마트폰의 손전등을 켰습니다. 이런! 날개를 퍼덕이며 매미가 울고 있습니다. 구월 초사흘, 한로(寒露)에 매미라니!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져 그에게는 치명적일 것입니다. '저 숲으로부터 매미소리가 들려온 것이 칠월이라면 팔월 한 달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다가 여기를 찾.. 2021. 10. 13.
김초엽(중편소설) 《므레모사》 김초엽(중편소설) 《므레모사》 《현대문학》 2021년 3월호 180~240 재미있다. 이런 소설 한 편 눈에 띄지 않으면 그 월간지를 들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체르노빌 혹은 후쿠시마의 대형 오염사고 이후의 세상을 연상하게 하는 비밀의 도시 델프스의 '므레모사'라는 곳을 찾아가는 방문단(유안, 레오, 프리야, 리우텐린, 탄, 주연과 선호 남매)과 므레모사로의 귀환자들 간에 벌어지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나(유안)는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의족을 낀 무용수다. 밤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실의에 빠진 그녀를 한나라는 여성이 붙잡고 헌신적으로 돕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실을 겪지만 그런데도 그 상실에 적응해나가요. 그게 인간이 가진 몇 .. 2021. 4. 8.
오츠 슈이치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 오츠 슈이치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 박선영 옮김, 21세기북스, 2011 '1000가지 죽음이 가르쳐준 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 그 '조건'을 암기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건 그 세 가지 중 한 가지일까? 아니 이건가? 그렇게 하여 메모한 문장들입니다. 당신은 혹시 말기환자나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보다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26) 분수를 알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힘, 특히 바깥세상을 향해 지나치게 바라고 구하려들지 않는 힘이 필요하다.(41) 당신 곁에서 당신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보며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서로 닮아가는 사람들 (…) 그들이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일 거라고 생각하는가.(62) 무리 속에 어울리지 않으.. 2018. 3. 29.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지현 옮김, 민음사 2015 장 그르니에는 알베르 카뮈에게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내가 맡은 젊은이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다는 점보다는 오히려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들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다.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1 단순하게(혹은 오만하게) "젊은이들을 가르친다"고 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 대해 가르친다"고 한 그르니에, "나의 책무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믿었다"고 한 그르니에가 존경스러웠습니다.2 일찍 그를 알았더라면, 나도 조금은 더 나은 교사였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가르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교육을 좀 더 깊이 있게 반성하는 교사였을 것입니다.. 2017. 1. 17.
『만남, 죽음과의 만남』 정진홍, 『만남, 죽음과의 만남』 궁리출판, 2003 Ⅰ 2003년에 나온 책이니까 오래 된 책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오래 보관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혹 절판되었다면 "보세요! 홍보를 많이 하는 처세서(處世書)만 찾으니까 이런 좋은 책이 사라지잖아요." 원망스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이 책의 내용에 미련을 갖고 있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도록 하는 책인가? 그런 뜻은 아닙니다. 저는 아직 그런 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쓴 책을 봐야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뒷표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사랑의 진술을 바탕으로 하여 죽음을 맞으면, 죽음은 그대로 삶의 완성입니다. 마침내 죽음은 삶이 짐작하지도 못한.. 2010.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