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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버리기4

버리기 - 다 버리기 뼛가루를 들여다보니까, 일상생활 하듯이,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그렇게 가볍게 죽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돈 들이지 말고 죽자, 건강보험 축내지 말고 죽자,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고 가자, 질척거리지 말고 가자,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 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입던 옷 깨끗이 빨아 입고 가자, 관과 수의壽衣는 중저가가 좋겠지, 가면서 사람 불러 모으지 말자, 빈소에서는 고스톱을 금한다고 미리 말해 두자...가볍게 죽기 위해서는 미리 정리해 놓을 일이 있다. 내 작업실의 서랍과 수납장, 책장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것의 거의 전부(!)가 쓰레기였다. 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한 생애가 지나갔다. 똥을 백자 항아리에 담아서 냉장고.. 2024. 12. 6.
버리기 - 책 버리기 책을 버리며 산다. 전에는 한꺼번에 수백 권씩이었는데 그간 많이 줄어들어 지금은 조금씩 조금씩 버린다. 누가 볼까 봐 주변을 살피지만 버리고 나면 개운하다. 책 몇 권을 버렸는데 매번 무슨 큰일을 치른 느낌이 든다. 책을 모으며 살던 때가 있었다. 늘어난 책을 보며 흐뭇해했다. 사람들이 보고 놀라면 자랑스러웠지만 혼자서도 그랬다. 삶의 보람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그러다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버리는 건 처음이 어렵지 나중엔 어려울 것도 없었다. 자서전 버리기는 예외다. 자서전은 책 중에서도 시원찮은 것들인데도 버리고 나면 개운하지 않다. 본인이 "지금도 갖고 있겠지요?" 할까 봐 켕긴다. 아직은 묻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긴 하다. 죽기 전까지 그렇게 물어오는 사례가 없어야 하는데 모르겠다.  극히 한정된 .. 2024. 12. 5.
타임캡슐 지난해 12월 21일 창밖으로 솜뭉치처럼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가 또 그 생각이 났습니다. 아직 피지 않은 목화의 열매 다래... 먼 곳 절 앞 목화밭에서 그 열매 세 개를 받았습니다. 그걸 책상 설합 안에 넣어두었는데 이태가 지난 어느 날 설합 깊숙이 들어 있는 물건을 찾다가 그걸 발견했습니다. 어! 웬 솜? 이런! 아직 파랗던 그 다래가 팝콘처럼 익고 폭발해서 하얀 솜뭉치 하나씩을 달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둠과 지루함을 이기고 타임캡슐로 변신해서 나타난 그걸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상은 이후로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대체로 부피가 큰 물건보다 작은 것들이 타임캡슐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버리기는 좀 그렇고 그렇.. 2023. 4. 19.
책 버리기 책 버리기는 '사건'입니다. 잊혀도 상처는 남습니다. 함께하기가 어려워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손수레로 세 차례 실어냈습니다. "어허! 죽을 때 가지고 가시지 왜 자꾸 버리세요?" 재활용품을 정리하던 경비원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누가 듣고 있지 않을까 싶어 얼른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저 꼴에 책을 읽는단 말이지?' 단 한 사람이라도 보게 되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 뻔합니다. 지난주에 내다버릴 땐 아뭇소리 않고 바라보기만 했었습니다. 순간 나도 덩달아 외쳤습니다. "벅차서요! 남아 있는 것도 다 가져가지 못하겠는걸요!" 정말 그걸 다 갖고 가라면 그 먼길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강을 건널 땐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죽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경비원은 큰 소리로 웃기만 했습니다. "어~ .. 2019.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