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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백석3

백석 「흰밤」 백석 / 흰밤 녯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정본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 그야말로 가을밤, 추석입니다. 온갖 것 괜찮고 지나고 나면 그만이라는 듯 오늘도 낮 하늘은 청명했습니다. 블로그 운용 체제가 티스토리로 바뀌자 16년째 쌓이던 댓글 답글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그 바람에 그렇게 되었는지 오가며 댓글 답글 다는 일에 시들해졌는데, 그러자 시간이 넉넉해졌습니다. 나는 내가 없는 날에도 그 댓글 답글이 내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때로는 한 편의 글을 쓰기보다 정성을 들여서 댓글을 달고 답글을 썼습니다. 또 힘을 내야 할 것 같긴 한데 마.. 2022. 9. 9.
백석 「고야古夜」 추위가 절정이어서 성에까지 끼어 있습니다. '이런 밤엔 어느 시인의 시를 고르는 게 좋을까' 하고 몇 권 되지도 않는 시집들을 살펴보다가 『정본 백석 시집』(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을 살펴보았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 이렇게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는 이젠 아무래도 내게까진 어울리지 않고 「고야古夜」가 나을 것 같았습니다. 고야古夜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산山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아늬 산山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거리며 다닌다 날기멍석을 져간다는 닭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2018. 1. 28.
백석「쓸쓸한길」 쓸쓸한길 거적장사하나 山뒤ㅅ녚비탈을올은다 아 ── 딸으는사람도없시 쓸쓸한 쓸쓸한길이다 山가마귀만 울며날고 도적개ㄴ가 개하나 어정어정따러간다 아스라치전이드나 머루전이드나 수리취 땅버들의 하이얀복이 서러웁다 뚜물같이흐린날 東風이설렌다 ― 『정본 백석 시집』(백석 지음/고형진 엮음, 문학동네, 2012, 1판16쇄), 207쪽.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오산고보와 일본의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고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다. 1935년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했다. 해방 후 고향에 머물다 1995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위의 책 날개에서 * 낱말풀이(이 시집 49) 거적장사 시신을 거적으로 대충 말.. 2013.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