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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반성5

어처구니없음 그리고 후회 지난 23일, 카페 "오늘의 동시문학"에서 '텅 빈'(소엽)이란 에세이를 보았다. 곱게 비질을 해 둔 절 마당으로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그 고운 마당을 다시 걸어 나오며 마음을 비우는 데는 빗자루도 필요 없다는 걸 생각했다는, 짧고도 아름다운 글이었다. 문득 일본의 어느 사찰에서 곱게 빗질을 한 흔적이 있는 마당을 보았던 일이 생각나더라는 댓글을 썼는데 그 끝에 조선의 문인 이양연의 시 '야설(野雪)'을 언급했더니 카페지기 설목(雪木)이 보고, 이미 알고 있는 시인 걸 확인하려고 그랬겠지만, 그 시를 보고 싶다고 했다. '쥐불놀이'라는 사람은, 카페 주인 설목이 견제할 때까지 저렇게 세 번에 걸쳐 나에게 '도전'을 해왔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고, 두 번째 세 번째는 더욱 그래서 답을 할 .. 2023. 12. 26.
한탄 혹은 탄식 웃고 말면 그만이고 '저러는구나' 하면 섭섭할 일 없긴 하지만 아내로부터 듣는 원망은 끝이 없다. 그중 한 가지는 뭘 그리 중얼거리느냐는 지적이다. 이젠 그게 못이 박혀서 혼자 있는 시간에도 나도 몰래 중얼거려 놓고는 바로 후회를 하곤 하니까 반성조차 하지 않던 때에 비하면 그나마 발전한 건 분명하다. '발전'이라고 표현했으니 말이지만 사실은 '그래, 중얼거리는 것도 버릇이지. 좀 점잖게 살자' 다짐한 것이 여러 번이어서 그럴 때마다 '오늘 이후에는 결코 이런 일이 없으리라!' 결심하면서 '그러니까 오늘이 이 결심의 출발선이다!' 하고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나도 몰래 그렇게 한탄(혹은 탄식)하고는 또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그 순간을 '출발선'으로 삼은 것도 수십 차례였으니 나는 정말이지 어쩔 수 없.. 2023. 4. 26.
아내의 잠꼬대 마음이 불편한 밤에는 여지없이 잠꼬대를 한다. 누구에겐가 외친다. 그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나는 후회한다. 후회는 종합적이다. 변명을 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고 싶은 후회다. 내가 먼저 죽으면 남은 밤들의 저 잠꼬대를 어떻게 하나……. 2019. 12. 17.
40년 간의 착각 1 지난 15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저녁나절, 도서관에 책을 갖다 주고 들어오는데 문득 D시 변두리의 어느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사십 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해의 교무실에서였습니다. 교장(여), 교감(남)이 저쪽 높은 사람들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여기저기 몇 명의 교사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장이 세상에는 가르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이 있고 가르치면 알아듣는 사람도 있지만, 가르쳐줘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했고, 키가 크고 얼굴도 훤하고 싹싹하고 예절 바른 교감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그 말에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2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그 얘기를 들으며 내가 담임하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간혹 떠올린 기억입니다. 아이들 중에는 .. 2019. 2. 25.
김영승 시집 『반성』 김영승 시집 『반성』 민음사, 2012 이 시집에는 '반성'만 들어 있습니다. 온통 '반성'뿐입니다. 시의 제목이 다 '반성'이고 일련번호만 다릅니다. 반성 39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 함께 자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왔다. 아내는 갈비탕을 먹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갈비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버스 안에서 아내는 아아 배불러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두 그릇 먹어서 그렇지 그러자 아내는 나를 막 때리면서 웃었다. 하얗게 눈을 흘기며 킥킥 웃었다. 재미있습니다.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편 한 편이 가슴이 아파오고 괜히 미안하게 됩니다. 내게 저 시인으로부터 삶이 곤고하다는 연락이 올 리가 없어 다행스럽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것이 비겁한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반성 673 우리 식구를.. 2014.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