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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목마와 숙녀3

"내 남편이 술에 취해서 꽃을 사왔어요!" 보험 설계원인 70대의 필이 퇴근길에 쇼핑센터에 들렀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70대 중반의 부인 낸시를 위해 꽃을 좀 사 가려고 그런 것이다. 꽃가게를 나서다가 사탕 가게를 발견한 그는 아내에게 줄 초콜릿도 한 상자 샀다. 집에 도착한 그는 꽃과 초콜릿을 양손 가득 들고 벨을 눌렀다. 낸시가 문을 열었다. 낸시는 필이 들고 있는 것들을 보고는 울기 시작했다. 필은 "왜 울어요?"라고 물었다. "오늘은 정말 끔찍한 하루였어요.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 접시를 떨어뜨려서 깼고요. 친구들 몇 명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친구들이 아프다며 약속을 취소했어요. 전화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온종일 수리 센터에 연락하느라 진을 다 뺐고요. 그런데 이제 당신까지 술에 취해서 돌아오다니!"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이라.. 2021. 1. 22.
박인환 「목마와 숙녀」Ⅱ 「자작나무숲의 작은 세계에서」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고1 여학생입니다. 2006년 가을엔가 '바다를 비추는 등대'라는 제 별명을 지어주었습니다. "인디언식이네?" 했더니 자신의 이름은 '생각하는 자작나무'라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그 아이의 블로그를 찾아가 봤더니 469편의 글이 실려 있고, 이 아이의 호흡을 따라잡기가 이처럼 어렵구나 싶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몇 자 적어 놓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반응이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초등학교, 더구나 당시의 교장 따위를 상대하고 싶겠습니까. 다 쓸데없는 일이지요. 책을 어마어마하게 읽고, 시험성적도 월등하고, 조용하고 …… 비범합니다. 그 블로그 메인 화면을 캡쳐해 왔습니다. 상대해 주지도 않는 '상대'지만... 블로그 「자작나무숲의 작은.. 2010. 4. 3.
목마와 숙녀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 2008.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