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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떠남4

앨리스 먼로 《떠남》 앨리스 먼로 《떠남》(단편소설) 김명주 옮김, 따뜻한손 2006 칼라˙클라크 부부는 승마 강습장을 운영합니다. 수강생이 적어 생활이 어렵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마구간에 들어갔다가 안장을 매고 있는 클라크와 마주쳤다. 그것이 칼라가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이다. 당시에는 클라크와의 관계가 단지 성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들 사이에는 남녀 간의 육체적 욕망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활달하고 건강미 넘치는 젊은 여성 칼라는 실비아·제이미슨 부부 집 청소를 해주며 생활합니다. 실비아는 식물학 교수이고 제이미슨은 이름난 시인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그 단조로운 삶의 리듬은 좋은 것이지만 실수는 그 리듬이 좋은 걸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클라크가 실비아를 위협해서 돈을 뜯어내자고 합니다. "신문에 .. 2021. 8. 25.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전은경 옮김, 들녘 2014 1 라틴어, 헤브라이어, 그리스어에 능통한 교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57)는 한때 제자였던 젊은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책 읽기와 고전문헌학이 전부인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런 그가 비 내리는 날 아침 출근길에 키르헨펠트 다리 위에서 한 포르투갈 여인을 만납니다. 신비감을 품은 그 여인은 자살을 시도한 직후였습니다. "모국어가 뭐지요?" 그는 조금 전에 이렇게 물었다. "포르투게스(Portugués)." '오'는 '우'처럼 들렸고, 올리면서 기묘하게 누른 '에'는 밝은 소리를 냈다. 끝의 무성음 '스'는 실제보다 더 길게 올려 멜로디처럼 들렸다. 하루 종일이라도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 2018. 10. 17.
내가 왜 여기에? 내가 왜 여기에? 문득 '내가 왜 여기에?' 싶을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아파트의 다른 층에 내렸을 때처럼 낯선 느낌입니다. 얼마쯤 얼이 빠져 있을 때여서 '내가 그랬었다고?' 나 자신에게조차 잡아떼면 그만인 그런 순간이긴 합니다. 밖에 나가면 당장 나의 이 집을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 2018. 6. 25.
모두 떠났다 Ⅰ 그 식당은 저 산 오른쪽 기슭에 있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춘천이나 양평 쪽으로 가면서 먼빛으로 한적한 산비탈의 그 식당 건물을 바라본 사람들은 누가 찾아갈까 싶었겠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점심, 저녁 시간에 걸쳐 종일 사람들이 몰려들어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계산대 옆에 커피 자판기, 원두커피 포트가 준비되어 있고, 맞은편 주방 앞에서는 분명히 안주인의 친정어머니일 듯한 할머니가 단정한 모습으로 마늘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안주인의 다소곳한 품위를 그대로 물려준 어머니답게 더러 화장실을 갈 때가 아니면 여름에나 겨울에나 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할머니의 성품은 마늘조각에 그대로 나타나서 어느 조각이나 '무조건' 같은 크기였고 자른 모양도 한.. 2015.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