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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다른 색들5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Ⅲ 여기와 다른 곳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8 춘천이나 강릉에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전주나 여수도 좋고 통영, 진주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유는, 막연합니다. 춘천, 강릉, 전주, 여수, 통영, 진주....... 우선 지명부터 좋은 곳들이지만 그런 곳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이미지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아서 단 한 가지도 “이것!”이라고 내세우기는 어렵습니다.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제는 이스탄불이 아닌 곳, 유럽 혹은 서양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무언가 ‘부족한 삶’일 것이라고 예감했었고, 이 예감의 일부분은 자신은 이스탄불, 그리고 터키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중심부 바깥, 변방에서 산다는 생각, 느낌과 관련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학에서의 근본적인 명제도 자신이 “중심부에.. 2020. 6. 23.
《다른 색들》Ⅱ 나는 왜 읽는가?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8 어떤 결핍감, 어떤 불충분함.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용기를 내어 여행을 떠난다. 이것은 휘스레브와 쉬린이 사랑을 위해 떠난 여행과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를 완성시킬 '타자'를 찾는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더 배후에 있는, 더 중심부에 있는 것을 향한 여행. 아주 먼 곳에 어떤 실제가 있다. 누군가가 이를 우리에게 말했고,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으며, 그것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문학이란 이 여행 이야기다. 나는 이 여행을 믿는다. 하지만 어디 먼 곳에 중심부가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것을 불행이라고도, 낙관주의라고도 말할 수 있다. (......) '쉬린의 어리둥절함'이란 에세이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쉬린은 천하일색의 아르메니아 공주.. 2020. 6. 18.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Ⅱ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로리타》 신동란 옮김, 모음사 1987(13판) 롤리타.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다는 느낌? ‘불경’은 아니지? 외설스럽다? 외설? 아니지! 외설하고는 다르지! 그럼? 소녀(여성?)의 이름은 국어사전에도 들어 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나보코프(Nabokov, V.)가 195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파격적인 소아 성애를 묘사하여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으며, 한때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발간되었을 때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오늘날 소아 성애를 가리키는 롤리타 콤플렉스가 일반 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나는 이 책을 '버젓이'(?) 들고 다니며 읽진 않았다. "(…) 아아 이름이 아주 예쁘구나 / 계속 부르고 싶어 / 말하지 못하는 / 나쁜 .. 2020. 6. 14.
어떤 여성일까? 45초간 수많은 사람과 건물 들이 땅속으로 사라진,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 지진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았다. "삶의 가장 은밀하고 잔인한 규칙이, 벽이 붕괴되고 넘어져 내부가 보이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처럼 드러났던 것이다." ‘삶의 가장 은밀하고 잔인한 규칙’이란 어떤 것일까? 그러한 드러남은 짧고 강렬한 지진의 경우에 더 심한 것일까, 아니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전 세계를 짓눌러 미증유의 변화를 강제하고 있는 코로나 19와 같은 현상에서 더 심한 것일까?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그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고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적인 두려움이 되고 있다. 백신은 아무리 조급해도 절차에 따라 개발된다는 뉴스를 보며 초조해지고, 시인들은 시(詩)는 백신 .. 2020. 6. 9.
오르한 파묵(에세이) 《다른 색들》Ⅰ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18 일요일 아침에 출근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겠지. 자전거 위에서 둑 아래로 흐르는 가을 시냇물을 내려다보며 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서정시인 생각을 했고 무슨 다짐도 했었다. 오십 년..... 충분한 세월이 흘렀다.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열차는 당연한 것처럼 지금도 다니겠지? 그만 타겠다고 얘기하진 않았다. 그 말을 했어야 할까? 고속도로는 막히겠지? 그것도 확인해야 할까? 나는 무관심했다. 다가온 일들은 지나가면서 계약이나 했던 것처럼 세월도 데리고 갔다. 너무 멀리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잊어버렸다. 다짐, 길, 사람들, 일들…… 정리되지 않은 것들뿐이다. 멀리 와서 오래되어서 생각만으로도 지친다. 오르한 파묵의 에세이가 더 그렇게 .. 2020.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