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61 조정인 「문신」 문신 - 조정인 (1954 ~ ) 고양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고양이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고양이는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두고 갔다 발톱이 그린 무늬의 중심부는 거칠게 패었다 말해질 수 없는 비문으로 할머니는 그 자리를 오래,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다 하느님은 묵묵히 할머니의 남은 5년을 위해 그곳에 당신의 형상을 새겼던 거다 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기에 고양이를 보내고 할머니는 하느님과 살았던 거다 독거, 아니었다 식탁은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다 식탁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었다 부끄럽지만 한때 내가 죽으면 그 무덤에 세울 비석에 새기라고 부탁할 글을 구상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한다면 나를 만나보지 못한 내 후손 중에는 나를 무슨 중시조(中始祖)나.. 2011. 4. 21. 이전 1 ···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