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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나의 죽음3

죽음의 순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열세 살 때 우리 아버지 요셉 그린바움은 마지막 병으로 쓰러졌다. 아버지는 악성 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죽기 몇 주 전에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쇠약해졌다. 피부는 쪼그라들고 흙빛이 되었고 뺨은 푹 꺼졌으며 머리카락은 한웅큼씩 빠졌고 이빨은 썩어갔다. 아버지는 한 시간 한 시간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입 안이 함몰되어서 계속해서 교활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었다. (…) 아버지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의사들은 희망도 없었고 아버지는 알고 계셨고 아버지가 알고 있음을 자신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의사들은 고통을 덜어주는 약을 주고 마지막 며칠 동안 아버지가 보여준 평온함에 놀람을 표시.. 2020. 11. 20.
내가 죽었다는 통보(부고) '내가 죽었다는 통보', 이걸 생각해봤습니다. 이 순간의 실제 상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언제 실제 상황이 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듣기 싫다" 하고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고 할 사람이 없지 않겠지요. 그런 분은 흔히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George Bernard Shaw)는 묘비명을 쓰게 한 작가가 있었지 않습니까? 사실은 이 정도는 준비도 아니지요. 그냥 생각을 해보는 거지요. 일전에 지인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소천(召天)"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소천? 알고 보니 개신교에서 쓰는 말이었습니다. 하기야 하늘은 날.. 2020. 8. 31.
누가 먼저 죽어야 하나 누가 먼저 죽어야 하나 -걸으며 생각하며 Ⅳ- Ⅰ 아내와 말다툼을 하면 속전속결(速戰速決), 그 상황을 얼른 끝내고 만다. '속전(速戰)'보다는 '속결(速決)'에 더 힘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도 걸핏하면 말다툼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으레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저 생각이 .. 2012.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