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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김숨3

김숨(단편소설)《파도를 만지는 남자》 김숨 단편소설 《파도를 만지는 남자》(문장 발췌) 「현대문학」 2022년 1월호 * 흰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가는 내 모습을 부모님께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 가을 선생님, 혼자서 갈 수 있어요? * 가을 선생님, 혼자서 잘 찾아가야 해요. * "나도 너희와 같단다. 그래서 너희의 모습을 보지 못한단다. 내게 너희 목소리를 들려주겠니?" * "우리 서로의 목소리를 기억하도록 하자." * 열여덟 살 여름방학 전까지 보이던 버스 번호판이 안 보였어요. 나는 버스를 잘못 탈까봐 두려웠어요. (...) 내 눈이 멀었다는 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어요. * 나는 기다려요. 낯선 곳에 가면 그곳의 소리들이 내게 길을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려요. 세상의 소리들은 내게 길을 만들어줘요. 차들이 도로를 달려가는 소.. 2022. 2. 3.
《한 명》(抄) Ⅱ 김숨 『한 명』(抄) Ⅱ 『현대문학』 장편연재소설 어슴푸레한 새벽 그녀는 홀로 깨어 있다. 자신 앞에 누군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입을 뗀다. "첨에 갈 적에4)……." "첨에…… 내가 만주까지 어떻게 끌려갔느냐 하면……." "만주 얘기 난 누구한테 안 해. 창피해서5)…… 동기간들한테도.. 2016. 8. 9.
김숨 『한 명』(抄) 김숨 『한 명』(抄) 『현대문학』 장편연재소설 소녀상(2012.9.26) 투명한 유리잔 속 우유를 그녀가 바라보기만 하자 옷수선가게 여자가 마시라고 재촉한다. "우유를 먹으면 소화가 안 돼서." 우유를 보면 남자 정액 생각이 나서³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어 그녀는 그렇게 둘러댄다. 정액을 삼키라고 했지.³¹⁾ 나이가 지긋한 장교였다. 술에 잔뜩 취해 방으로 들어와서는 송진처럼 달라붙었다. 그녀가 발로 차면서 거부하자 군복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더니 다다미에 꽂았다. 다다미에는 단도로 찍은 칼자국이 누렇게 시들어 떨어진 솔잎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소녀들은 일본 군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권총으로 아래를 쏘기도 했으니까. 권총 방아쇠를 당길 때 그들은 총구멍이 겨누는 곳.. 2016. 5. 7.